욕망의 포효 25
“왜 그렇게 물어?”
“어쨌든 부부로 살았잖아. 아무리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해도 불행하길 바라진 않을 거 아니야. 그 여자 잘못되면 당신 장인어른도 더 힘들어질 테고.”
“그래서?”
“잘 보내주라고.”
“뭐?”
“나한테 오려고 나무 모질게 굴지 말고, 가슴에 남은 상처를 보듬어주라고. 그 사람도 사람인데 자기 잘못을 모르겠어? 자기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된 거 자책 많이 할 거야. 어쩌면 죄책감과 자책감 때문에 당신과 다시 시작하려고 한 건지도 몰라.”
“희수야.”
목구멍으로 뜨거운 뭔가가 치솟자 효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진선이 그렇게 된 것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만 했다. 진선이 죄책감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우리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 당신 마음도 편치 않잖아. 당신 장인어른과 소진선 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당신 마음도 편할 거 아니야.”
“왜 내 마음을 생각해? 내가 더 상처받고 아파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당신한테 난 나쁜 놈이잖아.”
“당신 바보야? 그래. 당신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고, 오만한 사람이야. 그렇다고 당신이 불행하길 바란 적 없어. 당신이 상처받은 상태로 나타날 줄 몰랐어. 당신 아픈 거 싫어. 다른 여자 때문에 걱정스러운 얼굴 하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오라고. 그 여자 지금 어디 있어?”
“몰라. 별장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가봐. 휘석이한테는 내가 갈게. 솔직히 당신이 휘석이 돌봐주겠다고 했을 때 놀랐어. 휘석이는 당신을 적대시했으니까.”
“그렇게까지 적대시하지는 않았어. 소중한 친구에게 또 상처 줄까 봐 그 친구 나름대로 방어벽을 치려고 한 것뿐이지. 당신한테 소중한 사람은 나한테도 소중해.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한심하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그에게도 소중하다는 말이 희수 가슴에 새겨졌다.
엇갈린 운명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인생은 한 단면에서 어긋났을 뿐 윤효준이 자기 남자인 것이 현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음을 장인어른께 돌려줄까 생각 중이야.”
효준의 말에 희수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왜?”
“어차피 장인어른의 도움이 있었기에 청음이라는 매장이 생겼어. 이혼까지 했는데 청음을 내가 차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청음 돌려주고 뭐 하려고?”
“뭐든 못 하겠어? 당신이 내 곁에서 같이 해줄 거잖아. 당신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당신하고 뭐든 같이 하겠다고 말한 적 없어. 그런데 품평회는 뭐 하려 하려고 해?”
“돌려줄 때 돌려주더라도 더 좋은 상태로 돌려주면 좋잖아. 진선이하고 완전히 끝내려면 받은 거 전부 돌려주는 게 맞아.”
효준을 쳐다보던 희수는 그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손을 잡아주었다.
소진선하고 완벽하게 정리하려는 그의 진심이 보였다.
소진선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왜 이러실까? 나 자극받는다고.”
효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장난으로 받지 마. 당신의 결정을 응원할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장담은 못 해.”
“안 되겠다. 나가자.”
“어딜?”
“어서 일어나.”
“왜?”
“특단의 조치를 해놔야겠어.”
희수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효준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차에 태워진 채 그에게 끌려갔다.
갑자기 무슨 특단의 조치를 해놓아야겠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시내로 나온 그는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달렸다.
인상을 쓴 채 그를 쏘아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
“여길 왜 와?”
“목줄 채워놓으려고.”
“뭐?”
희수는 사방을 둘러봐도 반짝반짝 빛을 내는 보석들을 보고 당황했다. 효준이 희수를 데리고 온 곳은 주얼리샵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아가씨가 할 건데요. 목걸이와 반지 좀 보여주세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이 상품들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것들입니다.”
직원이 보여주는 주얼리를 살펴보는 효준의 팔을 잡은 희수가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그냥 가자고.”
“왜? 목줄 채워놓을 거라니까.”
“알았어.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그냥 가. 여기 비싸.”
효준이 잡아당기는 희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와 마주 서서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강희수!”
“왜? 나가자고.”
“당신, 이 정도 받아도 돼.”
“응?”
“내가 당신에게 해준 게 없잖아. 말로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물론 보석으로 내 마음을 봐달라고 하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최소한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목줄 채워놓는다고 해서 내가 당신 마음을 받아줄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강희수를 몰라? 나처럼 나쁜 놈한테도 마음 써주는 그 착한 마음을 내가 못 느꼈을 것 같아?”
“뭐래? 그런 적 없거든.”
멋쩍은 희수는 시선을 피했다. 눈치 빠른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말하니 민망했다.
“골라봐.”
효준은 희수를 주얼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마지못한 희수는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보석들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아름답고 예뻤다.
이런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효준에게 받을 줄은 더욱 몰랐다.
“이건 얼마예요?”
희수가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그걸 왜 물어? 당신은 마음에 드는 거나 골라.”
효준이 나무라듯이 말했다.
“다 예뻐서 못 고르겠어.”
“난 이게 좋아. 이거 보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이 상품을 꺼내 놓았다. 하트에 열쇠가 걸려 있는 펜던트였다.
하트와 열쇠에 큐빅이 촘촘히 박혀 있는데 너무 예뻤다.
반지도 하트와 열쇠가 작은 알로 되어 있는데 깔끔하고 예뻤다.
희수 마음에도 쏙 들었다.
“어때?”
“예쁘다.”
“이거로 할까?”
“으응.”
희수는 주얼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대답했다. 효준은 목걸이를 들어 희수 목에 걸어주었다.
거울을 들여다본 희수는 목에서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넋 나간 듯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