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를 위한 소나타 4
4. 부엌에서
"오 서방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가만히 누워있어.
요즘 젊은 여자애들 보니까 별소리를 다 하고 돌아 다니더구먼.
끔찍한 소릴 잘도 하고 다니더라.
우리 주영이 친구들이야 모두 요조숙녀니까 의심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가 있다면 모두 잊어버리거라.
괜히 아는 척하고 오 서방이 몸에 손대기도 전에 실수하면 너 처녀 아니라는 의심만 받게 되잖니."
친정어머니가 신혼 첫날밤을 걱정하며 신신당부 해주셨던 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실수라는 건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하간 나는 그 말을 지켰고 남편은 붉게 물드는 침대 시트를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캠퍼스 커플이라는 좋은 명목 아래 남편은 혹여나 다른 남자들의 손을 탈까 봐 노심초사 나를 지켰으니까.
남편과 첫 키스를 했고, 남편과 첫 관계를 치른 것이다.
`나는 불행한 것일까.`
죽을 때까지 한 남자만 알고 지내는 게 과연 불행한 것인지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일 년간의 결혼 생활을 미루어 보면, 남편이 여자를 잘 다룬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나도 성인 잡지나 기타 매체를 통해 성적인 묘사를 듣고 보았으므로 비교 분석을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하복부에 뻐근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 내가 아는 섹스 전부였다.
그것을 남들이 과장된 포장을 덧씌워 열거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랬는데.
"미선..."
신음하듯이 그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진희는 미선이라는 여자에 대해 훤히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내 나에게 질투와 선망의 눈길을 보냈던 진희였다.
남편은 단단해 보이는 몸과 선이 분명한 얼굴을 가진 남성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내게 접근한 방법도 무척 능수 능란했다.
하지만 내가 여자 중학교와 여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왔다는 것과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한 가정의 외동딸이라는 것을 알아낸 다음부터는 집요할 정도로 내 뒤를 쫓았다.
한마디로 남성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남자였다.
선생님들과 사대부 집안의 가장답게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남편의 손으로 나는 넘겨졌다.
다른 남자들을 접해볼 기회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배짱 좋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 남편은 자신이 세운 계획표대로 나와의 결혼을 착실히 진행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진희가 맴돌고 있었다.
답답한 갈증에 목이 탔다.
침대에서조차 나는 남편의 뜻을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남편은 친정아버지와 똑같은 존재였다.
유일하게 거부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펠라티오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그것만큼은 강제로 시키지 않았었다.
남편의 딕을 애무한다는 것은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삼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미선의 말대로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다리를 벌려주는 것만이 섹스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딩동-
남편이었다.
나는 황급히 거실까지 나갔다가 다시 침실로 들어왔다.
남편은 네 개의 열쇠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열어주지 않는 이상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옷을 주워 입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미 남편이 열쇠를 꺼내 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벗어든 옷을 손에 들고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 방을 서성였다.
괜히 옷을 마저 다 입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상한 의심만 사게 될 것 같았다.
마침내 욕실로 달려가서 수건으로 된 가운으로 몸을 감쌌다.
침실에는 벗어 던진 옷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뭐 하고 있었어? 시장에 간 줄 알았어."
남편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하곤 거실의 소파에 털썩 앉았다.
피곤한지 목덜미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눈을 피해 가운을 손으로 여미며 싱크대 앞으로 갔다.
저녁으로 먹을만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을 리 없었다.
남편은 끼니때마다 방금 만든 반찬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냉장고 안의 음식 재료들을 무작정 꺼내 놓았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파를 썰어 넣고 달걀말이를 해볼까. 그리고 굴비 한 마리를 굽고 시금치를 무치면 되겠구나.`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미선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대충 아무렇게나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파를 썰기 전에 달걀을 풀어야지.`
달걀 몇 개를 투명 볼에 깨트려 넣었다.
`미선이하고 키스했다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들킬세라 남편이 있던 소파를 쳐다보는데, 뜨거운 입김이 목덜미에 느껴졌다.
흠칫 놀란 손에서 달걀이 미끄러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달걀노른자가 부엌의 작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다.
소리 없이 다가온 남편이 내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돌려세웠다.
불타는 듯한 남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풀어 헤쳐진 가운의 앞섶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생각에 잠겨 가운이 벌어진 것을 모르고 있던 탓이었다.
유달리 왕성한 성욕을 가진 남편이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칠 리 없었다.
남편은 가운의 양쪽을 잡고 확 열어젖혔다.
벌거벗은 어깨와 분홍빛 젖꼭지가 드러났다.
"아! 안 돼요. 여기서는."
남편은 손으로 거칠게 가슴을 거머쥐고 내 젖꼭지를 깨물었다.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직 샤워하기 전이었나 보지? 그냥 가만히만 있어."
"......"
'가만히 있어.'
친정어머니가 당부했던 말이었는데 남편도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어야 하지?
"싫어요."
"가만히 있어."
녹음기처럼 남편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성급하게 바지 지퍼를 내렸다.
나는 목욕 가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발가벗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리에 감았던 가운의 끈이 풀어졌다.
남편은 소중한 도자기를 다루듯이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받쳐 들고 식탁 위에 가만히 눕혔다.
목욕 가운은 침대 시트와 같은 용도로 식탁 위에 펼쳐졌다.
"아...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