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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욕망의 포효 27

육덕와잎 0 14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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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은 담운의 쌀쌀한 말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정말로 인연을 끊으려는 것 같아 덜덜 떨렸다.


“아버님께서 그렇게 키우신 겁니다.”


효준의 한마디에 담운과 진선의 눈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뭐?”


“하나뿐인 딸이라고 오냐오냐 키운 결과입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자네…….”


“그러니까 불쌍하게 여겨주시죠. 진선이도 아이 잃고 힘들었을 겁니다. 그 마음을 알지도 못했고, 보듬어주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이 사람 돌봐줄 사람은 아버님뿐입니다. 좋은 사람 만나기 전까지 아버님께서 이 사람들을 보듬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미흡한 인간인지라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땐 몰랐습니다. 

이제야 그걸 깨닫고 보니 이 사람에게 참 미안한 것이 많습니다. 야속하다고만 생각했지, 얼마나 울었을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자네가 끝까지 책임지면 안 되겠는가? 처음부터 내가 자네에게 원했던 건 진선이 뿐이었네. 물론 자네 능력이 훌륭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진선이가 좋다고 해서 받아들인 거네.”


“전폭적으로 절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신 거 압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진선이와 부부인연은 끝났습니다.”


효준은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말했다. 담운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진선을 위해서 진심으로 말하는 효준이를 쭉 사위로 두고 싶었다.


“넌 이런 남편 잃고 살 수 있겠어?”


담운이 진선에게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포기했어요.”


“잘할 것이지. 그렇게 좋아하면서 보내고 어찌 살라고 그러는지…….”


담운의 눈가가 촉촉해지자 진선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 때문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눈앞이 암담하고 속이 먹먹해서 혼자 울던 그때가 서러웠다. 


평생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효준에게 위로받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하더니, 효준이 사람을 잘 만난 모양이다. 

그 여자에게서 효준을 빼앗을 때는 아픔만 주었을 텐데, 자신은 뺏기면서 위로를 받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아버님. 청음을 돌려드릴까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청음은 이 사람과 결혼하면서 얻은 겁니다.”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제 손에 들어오지 않았을 청음입니다.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진선이는 그렇다 치고, 나하고도 완전히 인연을 끊으려는 건가? 

청음은 자네 노력의 결과물이야. 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자네는 해냈을 걸세. 시간이 좀 걸렸겠지만 말이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청음을 더욱 크게 키워보게나.”


“아버님.”


“진선이를 이해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진선이 탓하면서 매몰차게 돌아섰어도 난 할 말이 없었을 걸세. 

사정 몰랐을 때는 진선이가 그렇게 원하는데 냉정하게 구는 자네가 야속했었지. 

혼쭐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앞에서 당당한 자네를 보고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알아봤더니, 일이 그렇게 된 거더군. 왜 내게 말하지 않았나?”


“이 사람은 나보다 아버지 걱정을 더 했어요. 아버지가 힘들어하실 것 같으니까 난 냉대해도 아버지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진선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담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효준을 지그시 쳐다봤다.


“청음은 자네 거네. 알았는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살게.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오고.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는 끊어졌지만, 난 사업가네. 자네도 사업가고. 공적인 일로는 끊기지 않을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진선이는 걱정하지 말게.”


“네. 아버님만 믿겠습니다.”


“난 자네 정말 좋아했었네.”


“압니다. 저도 아버님 존경합니다.”


“후후후. 고맙네. 난 그만 가보겠네. 넌 여기 더 있을 거냐?”


담운이 진선에게 물었다.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다지만, 딸을 저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팠다. 

집안 망신이니 만큼 자기 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진선이 이런 것이 본인 탓이라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효준 덕에 정신을 차렸다.


“네. 며칠 더 있을게요.”


“알았다. 그럼 가마.”


담운은 진선과 효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나갔다. 효준과 진선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더 할 말 없는 효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당신한테 너무 큰 아픔을 줬어. 

평생 당신 미워하면서 살려고 했어. 그 여자하고 절대로 행복해지지 말라고 저주하려고 했어. 

그런데 정말로 당신이 불행해지길 바라진 않았어. 그냥 내 처지가 너무 처량해서 그랬어.”


“당신, 그렇게 악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생각 들 수도 있지. 건강 잘 챙겨.”


“우연히 만나면 모른 척해야 해?”


“굳이 아는 척해야 할 이유가 있겠어?”


“알았어. 그렇게 할게. 오늘 고마웠어. 그리고 얼굴 그렇게 만든 건 미안해. 상처 남는데?”


“괜찮을 거래. 걱정하지 마.”


“다행이네.”


“갈게.”


“조심해서 가.”


“아무 탈 없이 잘 살 거지?”


그가 다짐하듯이 물었다. 담운이 마음을 푼 것 같아서 안심이긴 했지만, 진선의 마음은 어떤지 확실하지 않아서 불안했다.


“그럼. 잘 살 거야. 당신보다 더 잘 살 거야.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할 거야. 다시는 똑같은 실수 하지 않아.”


“믿을게.”


“그런데 당신을 잊지는 못할 거야. 생각날 땐 생각할 거야.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진 않을 거야.”


“그렇게 해.”


“원래 당신 짝은 강희수였는데 내가 방해한 것 같아.”


“당신과의 결혼은 내가 선택한 거야. 당신 탓이 아니야. 잘 지내.”


효준은 별장을 나왔다. 


미워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는 마음이 훨씬 가볍고 산뜻했다. 

희수가 아니었다면 평생 힘들게 살았을 거다. 

진선을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웃지 않는 인생을 살다가 무의미하게 죽었을 거다. 

갑자기 희수가 막 보고 싶어졌다. 

그는 블루투스를 귀에 끼고 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어디야?”


[집.]


“병원 안 갔어?”


[휘석이 어머니께서 휘석이 걱정돼서 오셨어. 아마도 휘석이가 오시라고 한 것 같아. 당신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그 녀석 참. 나 출발했어. 집에 있을 거야?”


[응.]


“바로 갈게.”


[그 여자 어때? 얘기 잘했어?]


“응. 아버님도, 진선이도 마음의 짐을 좀 던 것 같아 보였어.”


[당신은?]


“나도 편해졌어.”


[다행이네.]


“희수야?”


[응?]


“하늘이 맑다. 당신 손 잡고 평화롭게 걷고 싶어.”


희수가 말을 끊자 효준도 입을 다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걸까? 쉽게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초조해졌다.


“보고 싶어.”


효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빨리 와.]


희수의 말에 효준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알았어.”


[손잡고 산책하자.]


“응. 금방 갈게. 기다려.”


[안전 운전해. 더는 몸에 상처 내지 마.]


“응.”


전화를 끊은 효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계속 밀어내면 집요하게 밀어 불일 생각이었는데 희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평생 잘해도 희수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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