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교환) 내 이웃을 사랑하라...... - 1부
한참 지난 기억을 되살려 살을 보태서 글을 쓰다 보니 시대적으로 안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널리 이해하시고 태클은 사양합니다.
이글의 배경은 1990년대 후반입니다.
결혼한 지 5년째 접어들었다. 아내랑 나는 중매로 결혼했다. 아내는 중학교 교사였고 나는 유명한 SI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들 하나를 낳았고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맡기고 둘이 맞벌이하고 있었다.
이제 부모님의 도움과 은행 대출을 끼고 서울 외곽의 아파트를 한 채 분양받아서 이사하고 있다.
참 힘들게 마련한 집이어서 그런지 남다른 감회가 새로웠다.
공교롭게도 앞집도 우리와 같은 날 입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집의 여자가 아는 여자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문대리였다.
"어? 문대리. 이리로 이사 오는 거야?"
"어머? 손 과장님 과장님도 여기로 이사 오셨어요?"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이지적인 미모와 날씬한 몸매로 많은 직원으로 부터 관심을 받는 여자였다.
영화배우 문소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남편을 소개해 주었고 남편은 180 정도의 훤칠한 호남형의 중앙부서 공무원이었다.
다소 여성스러운 모습의 아내도 같이 인사를 하였고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다시 이삿짐을 정리하였다.
우리 두 집은 참 비슷한 면이 많았다.
문대리의 남편과 나는 나이가 같았고 아내와 문대리도 같은 나이였다.
결혼도 일주일 차이가 났으며 우리 아들과 그 집 딸도 같은 나이였고 그 집 또한 딸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맞벌이하는 것도 같았다.
그날 저녁 술을 한잔하면서 우리는 많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서로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걱정거리 하나가 해소되었다.
신흥 주거단지라 교통편이 아주 불편하였는데 다행히도 아내와 문대리 남편이 같은 방향이었다.
두 집 다 차가 한 대씩이고 직장도 같은 방향이 아니었는데.
또한 아내랑 문대리 남편 허상욱 씨와 출퇴근 시간도 비슷하고 직장도 같은 방향이었다.
물론 나와 문대리는 같은 회사에 다녔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또 같이 카플을 하면 부담도 적었기에 우리는 서로 카풀을 하기로 약속하고.
문대리와 카풀로 다니는 출퇴근 길은 정말 새로운 맛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일상에 관하여 물어보고 답하고, 회사의 업무나 다른 직원에 대한 평도 하고, 마치 새롭게 연애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매일 아침이 기다려졌고 퇴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에 미소가 들 정도였다.
물론 아내도 전보다 훨씬 생기있는 모습이었고 가끔은 문대리 남편의 자랑을 내 앞에서 할 정도였다.
참 잘생겼다니, 자상하다든지.
또 아내랑 허형이랑은 퇴근이 일러서 6시경 때면 집에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둘이서 같이 마트에서 장도 보고 가끔은 저녁도 같이 먹는 것 같았다.
나랑 문대리는 보통 8시경에 퇴근하였고.
주위에서 언뜻 보면 아마도 아내랑 문대리 남편과 부부 사이인 줄로 오해도 할 정도였다.
조금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별 연애 경험이 없었다.
아내랑 선본 지 6개월 만에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프러포즈하였고 별다른 연애 감정을 못 느끼고 결혼을 하였던 것 같다.
총각 때 못 느껴본 연애 감정을 요즘 문대리랑 느끼는 것 같다.
카풀 한 지 3개월 아내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내가 문 대리한테 빠져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문대리랑은 조금은 심한 농담도 하고 그랬다.
"문대리. 우리 와이프랑 자기네 신랑이랑 둘이 바람피우면 어떻게 해?"
"그럼 손 과장님이랑 살면 되죠."
재치 있게 받아드리곤 했다.
우리 넷은 가끔 저녁에 뭉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호프를 즐기기도 했다.
두 가족 다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있는 처지라 저녁때 뭉쳐서 늦게까지 처녀·총각처럼 자유롭게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휴가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아이 때문에 결혼 후 변변한 여름휴가조차 못 갔던 것에 대하여 여자들이 불만을 토로하였고
우리는 요번 여름휴가 때 넷이서 같이 휴가를 떠날 것을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