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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거미 여인의 정사 - 3장. 가을 소나타 2

복숭아 0 8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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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조용했다.

그녀는 또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남편과 딸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가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과 딸은 매정하게 강을 건너 언덕으로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그녀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강이 불바다로 변했다.

그녀는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깨어났다.


또 이런 꿈도 꾸었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도끼를 들고 그녀를 쫓아오는 꿈이었다.

그녀는 도끼를 든 사내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깨어났다.


그럴 때마다 속옷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딸과 남편이 문밖에서 그녀를 부르는 꿈도 꾸었다.

캄캄한 밤 중이었다.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람 소리에 섞여 딸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듯한 남편의 기척도 느껴졌다.


그녀는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흰옷을 입은 남편과 딸이 어둠 속으로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딸과 남편을 목이 메어 불렀다.

그러다가 꿈이 깨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악몽을 꾸셨나 봐요."


창가엔 가을비가 스산하게 추적대고 있었다.


"아직도 진통이 있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게 진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에 근심스럽게 서 있는 친정 식구들을 쳐다보았다.

또다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경찰이 밖에 와 있어요.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남편과 딸의 시체를 부검하려고 할 거예요. 부검이 뭔지 아세요?"

"..."


"해부하는 거예요."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인제 와서 남편과 딸의 시체를 해부하게 할 수는 없었다.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사흘이나 냉동실에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

"이제는 땅속으로 돌아가게 해야지. 장례는 나에게 맡겨라."

"아버지."

"왜?"

"그이가 천주교 신자잖아요? 윤미와 나란히 묻어 주세요."

"그래라."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례식은 모레쯤 할 예정이다. 미사도 봉헌하련?"

"장례 미사요?"

"그래"

"그이는 번거로운 것은 싫어할 거예요."

"그럼 장례 미사는 그만두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녀는 우두커니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할 듯 입을 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한때 작가가 되겠다고 습작을 무던히도 했지만 끝내 빛을 보지 못해 포기한 사람이었다.

늘 작가들에 대한 외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 바람에 결혼까지 늦게 해서 딸만 둘을 낳았다.

큰딸 보옥은 그의 영향을 받아서 글 쓰는 솜씨가 비범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문인의 등용문이라는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을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덜컥 임신하고 말았다.

상대는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의 충격과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으나 그들을 결혼시키는 것밖에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다.


보옥은 결혼 4개월 만에 딸을 낳았다.

윤미였다.

임신 중독으로 산모와 아이가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다.

의학계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라 하여 임상 일지를 학술회의에 보고해 화제를 일으키기까지 했었다.


그들은 결혼 후 행복하게 살았다.

그들의 신혼 생활은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았다.

미숙아였던 윤미도 우려와는 달리 잘 자랐다. 그러나 보옥은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었다.


"실례합니다."


그때 허름한 점퍼를 걸친 사내가 병실로 들어왔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사내였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경찰입니다. 몇 말씀 여쭤보고 돌아가겠습니다."

"..."


"이번 사건은 일가족 집단 자살입니까? 살해를 당한 것은 아니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일 때문입니까?"

"..."

"유서가 없던데 남기지 않았습니까?"

"네"


"자살자들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 건 드문 일인데..."

"남기지 않았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극약 성분이 뭡니까?"

"..."

"자살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체도 부검해야 하고 매장 허가도 나오지 않습니다. 검찰청에 사망 확인서를 보고해야 합니다."

"..."

"제 말씀은 장례식을 치를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

"돌아가신 분들을 편안하게 모셔야지요."


그녀는 형사를 외면하고 돌아누웠다. 형사는 무슨 말인가 할 듯하다가 그만두었다.

돌아누운 여자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린 떼강도를 만났어요.

폭풍이 몰아치던 밤. 자정이 거의 다 되었을 때일 거예요.

독서실에 간 딸을 데리러 갔다가 오는데 강도가 들어와 있었어요.

검은 스타킹으로 복면을 한...

모두 네 명이었어요.

그들이 남편을 묶어 놓고  제 딸을."


그녀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어깨가 가늘게 들먹거려지고 있었다.


"그놈들이 딸을 폭행했나요?"

"울부짖는 딸의 스커트를 찢고, 다리를 벌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토막토막 끊겼다.


"그리고 저를...그 짐승 같은 놈들이 차례차례."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대학생 보영이가 얼굴을 감싸 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도 울고 친정아버지도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형사가 비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일을 어떻게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그럼 그 일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셨습니까?"

"네"


그녀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정 식구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고 있었으나, 그녀는 놀랄 만큼 빠르게 이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까?"

"없어요."

"하긴 그런 경황 중에 목소리를 기억할 수는 없겠지요."

"..."

"빼앗긴 물건은 무엇입니까?"

"현금 17만 원하고 패물이에요."

"패물은 비싼 것입니까?"

"제 목걸이, 반지, 시계 그런 것들이에요. 비싼 것들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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