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2장. 폭풍의 밤 3
윤미가 돌아왔거나 바람에 저절로 닫힌 모양이었다.
벨을 눌렀다.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딸의 방이 있는 2층은 불이 꺼진 채 그대로 있었고, 아래층 안방만이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녀는 다시 벨을 길게 눌렀다.
그제야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정원을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대문 기둥에 등을 기댔다.
아우성치는 바람에 섞어 빗발이 마구 날렸다.
찰칵, 이내 자동개폐기가 풀어지면서 대문이 열렸다.
그녀는 대문 안으로 재빨리 몸을 들여놓았다.
"윽!"
그때 갑자기 그녀의 어깻죽지를 둔탁한 흉기가 가격해 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누군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남자의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그녀는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어느 사이에 섬뜩한 쇠붙이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가, 강도!)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시체를 만들어 버리겠어!"
사내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싸늘했다.
"들어가!"
사내가 뒷발질로 대문을 쾅 닫았다.
까만 스타킹으로 복면을 한 사내였다.
"빨리!"
사내가 그녀를 발길로 걷어찼다.
(침착해야 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사내에게 등을 떠밀리고 발길로 차이면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다급한 때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끌려 들어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러야 했다.
처참했다.
남편은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피투성이로 묶여 있었고, 딸 윤미가 침대 위에서 사내들에게 겁간당하고 있었다.
"윤미야!"
그녀는 울부짖었다.
"가만있어, 이년아!"
누군가 몽둥이로 그녀의 등을 후려쳤다.
그녀는 등이 부서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이면 안 돼!"
누군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희미하게 의식이 꺼져 갔다.
이것은 악몽이야,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발버둥을 쳤다.
입이 헝겊 조각으로 틀어 막혀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스커트가 찢겨 나갔다.
우악스러운 팔이 그녀의 어깨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빨리빨리 해치워!"
누군가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뜻밖에 여자의 목소리였다.
브래지어가 뜯겨 나갔다.
그녀의 나신을 가리고 있던 얇은 천 조각도 맥없이 찢어졌다.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누군가 그녀의 알몸을 사진 찍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안돼!)
그녀는 몸부림쳤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사내 하나가 그녀의 다리를 넓게 벌려 놓았다.
그러자 또 플래시가 번쩍 터졌다.
(이 더러운 놈들...!)
그녀는 피눈물을 흘렸다.
사내 하나가 바지를 벗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럴 수는 없어!)
그녀는 입속으로 울부짖었다.
(딸과 남편이 지켜보고 있는데 이렇게 당할 수는 없어...)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입만 틀어 막하지 않았으면 혀를 깨물어 죽고 싶었다.
두 번째 사내가 그녀에게 올라왔다.
그녀는 사내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렸다.
그 동안에도 카메라의 플래시는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다.
(왜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 와중에도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사내가 그녀에게 올라왔다.
그녀는 이제 하체에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태풍이 지나갔다.
그러나 태풍이 그들 가족을 할퀴고 간 자리에 처참한 상흔만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그녀는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쓸고 닦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악몽이라면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일은 악몽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흘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딸도 남편도 무겁게 입을 다물고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제는 눈물조차 말라 있었다.
그동안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은 땅을 팔라는 부동산 중개인들과 예성개발 직원들뿐이었다.
특히 예성개발 직원들은 수시로 전화질까지 했다.
남편은 어릴 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2만 평 정도 상속받았었다.
그러나 군사 시설 보호지역으로 그 땅의 대부분이 묶여 있어 개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부동산 중개인들과 건설회사 직원들이 갑자기 그 땅을 팔라고 뻔질나게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땅이 군사 시설 보호지역에서 해제되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아..."
어느 날 남편이 불쑥 그런 말을 했으나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땅은 20여 년 전부터 군사 시설 보호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금지되고 집을 짓는 일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 땅이 하루아침에 해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부대가 다른 곳으로 간대요?"
"몰라. 그렇지만 복덕방과 건설회사 직원들이 뻔질나게 찾아오는 것을 보면 뭔가 수상해."
"우리한테 그런 복이 오겠어요?"
군사 시설 보호지역에서 해제된다면 비록 서울의 변두리이기는 하지만 땅값이 엄청나게 뛸 것이다.
"우리가 뭐 어때서?"
"난 지금 사는 것으로도 만족해요. 더 바라는 건 욕심이에요."
"그 땅이 해제되기만 하면 우린 떼부자가 되는 거야. 지금 시가의 열 배는 뛸 거야."
"그래야 7천 평밖에 더 남았어요?"
남편은 상속받은 2만 평의 땅을 찔끔찔끔 나눠서 팔거나, 농사짓는 친척에게 헐값으로 나누어 주어서 이제는 7천 평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7천 평이라도 열 배면 3억 5천만 원이야."
"어떻게 열 배까지 땅값이 뛰어요?"
"그렇게 되면 당신 자가용부터 한 대 사주지."
"애개..."
"왜 웃어?"
"돈이 많이 생기면 당신 바람피우니까 해제되지 않는 게 더 좋아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군."
그 말에 그녀도 웃고 남편도 웃었다.
그러나 그 땅이 해제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동산업자들과 건설회사 직원들이 땅을 팔라고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