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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거미 여인의 정사 - 6장. 미궁 속의 그림자 1

비밀많은남자 0 7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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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정신병원에 입원한 홍보옥은 11월 27일에 퇴원했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만의 일이었다.


그녀는 1주일 동안 친정집에 머물렀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친정아버지가 거여동의 땅과 집을 모두 팔아버린 탓이었다.

그녀는 그 얘기를 듣고 오래오래 서럽게 울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것은 친정아버지가 그녀를 위해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실에 아파트 하나를 세내었다.

그리고 거여동의 짐들을 모두 옮겼다.

그러자 1주일이 후딱 지나갔던 것이다.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친정아버지는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땅을 팔아버린 사실을 몹시 미안해했다.


"원망하지 않아요."


그녀는 우울하게 대꾸했다.

친정아버지를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두 너를 위해서였어. 너는 그 집에서 정신병까지 생겼으니까... 나는 악몽 같은 과거는 하루빨리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그러다가 또 병이 재발해."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가 정신 이상을 일으킨 것은 비가 오는 밤이면 영락없이 나타나서 유령놀이를 하는 자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를 희롱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신 이상을 일으킨 것은 그녀가 본 것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정신 이상은 그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날 밤에도 비가 왔었다.

자정이 되자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2층을 저벅거리고 왔다 갔다 하는 발걸음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녀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으나 과도를 들고 2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2층 거실엔 이미 핏자국이 낭자했다.

전등을 켜자 사람의 팔 하나가 잘려져 피아노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보였다.

피투성이 팔 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본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그것이 그녀가 정신 이상을 일으키기 전날 밤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녀는 정신 이상 중에 있었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했다.

남편이 다니던 제약회사의 동료 연구원이 퇴직금을 가지고 왔을 때 그녀가 유혹하려 했던 낯 뜨거운 일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독서실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우유에 수면제를 타서 마시게 한 다음 그를 침대로 끌고 갔었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무엇 때문에 그녀의 내부에서 그렇게 추악한 욕망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깨끗이 잊기로 했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행복한 가정을 짓밟은 짐승 같은 자들에게 복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암담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범인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범인들이 왜 그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동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파트 안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녀가 잠실의 아파트로 옮긴 지 사흘이 지난 오후의 일이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이었다.

첫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우중충한 날씨였다.


(눈이 왔으면...)


그녀는 거실 창을 내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릴 눈이 왔으면 싶었다.


(덕수궁에나 갈까.)


그녀는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도 덕수궁에서였다.

펜팔을 통한 만남이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는 미술관 앞 벤치에서 한 시간 반이나 남편을 기다려야 했었다.

남편이 거여동에서 오느라고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보옥이?"


그는 키가 크고 눈빛이 서늘했다.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까지 헐레벌떡 달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부터 내밀었다.


"네?"


그녀는 엉겁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나. 재우야."

"어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이 근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니까."

"애걔!"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첫눈이 내리고 있어서인지 덕수궁엔 여학생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눈이 오는 걸 보고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어요."


눈이 제법 푸짐하게 내리고 있었다.

잔디밭에도, 분수대에도, 그리고 조각 작품 위에도 함박눈이 어지럽게 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보옥은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어린아이라 잘 몰랐다.

그러나 그가 옆에 있으면 좋았고, 그가 없으면 보고 싶었다.

그해 겨울 그녀는 남편 재우에게 순결을 바쳤다.

그가 요구하는 그 어떤 것도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봄 그녀는 남편 재우와 결혼식을 올렸다.


보옥이 덕수궁에 도착했을 때도 첫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과 처음 만났던 벤치에 앉아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남편 재우를 처음 만나던 일, 그를 사랑하여 윤미를 낳고 꿈처럼 행복하게 살던 일, 그리고 폭풍이 불던 밤 짐승 같은 사내들에게 짓밟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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