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5장. 거미 여인 2
그는 책상 위의 메모지에 달필로 "미네르바 호텔 커피숍, 비자금 1천만 원 검은 선글라스의 여인에게 6시까지 전달"이라고 휘갈겨 써서 봉투에 넣고 테이프를 붙였다.
그리고 누가 뜯어볼 수 없게 대외비(對外秘)라고 붉은 스탬프를 찍고는 직인으로 봉인했다.
그리고 그는 비서실의 여비서를 들어오게 했다.
"이거 오후 4시 반에 장 부장에게 전해."
"네"
여비서가 두 손으로 공손히 봉투를 받았다.
"미스 현"
그가 안락의자에 일어나며 여비서를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네"
여비서가 몸을 돌려 나가려다 말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더니 여비서 미스 현의 몸도 뽀얗게 물이 오르는 것 같았다.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나?"
"그냥..."
여비서가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용돈은 떨어지지 않았나?"
"네"
"가을도 되었는데 새 옷도 사 입고 그래."
그가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수표 두 장을 꺼내어 여비서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쥐는 여비서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사업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 늙은것들이 여자만 밝히려 드니 원..."
"..."
"술집 여자들도 신물이 났는지 여비서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거야. 그래서 어떤 회사에서는 접대용 여비서를 따로 채용하는 일도 있다니까."
"말씀하시면 따르겠습니다."
"고마워. 퇴근하고 산장 호텔 707호실에서 손님을 한 분 모셔줘. 블루우 파크 산장 호텔 말이야."
"네"
"높은 분이야. 잘 모시면 내가 또 보답할게."
그는 격려라도 하듯이 여비서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사장 전용 엘리베이터로 1층 현관 로비로 내려오자 비서실장과 경비과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장님. 수행할까요?"
비서실장이 허리를 숙이고 물었다.
"음"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아동 현장."
비서실장이 열어준 문으로 BMW 승용차에 오른 그는 운전기사에게 가는 곳을 지시하고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위들이 일제히 경례하는 것이 차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이내 승용차가 풍원건설 빌딩 광장을 빠져나와 도심의 차량 대열에 휩쓸렸다. 벌써 10월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청량한 가을 햇살은 빌딩들의 유리창에서 부드럽게 반사되고 인도에서 사금파리처럼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좋은 날씨였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어 바람이 일지 않는데도 하늘하늘 떨어지고 젊은 여자들이 두꺼운 옷을 찾아 입고 있었다.
계절은 여자들의 옷에서부터 먼저 오는 모양이었다.
미아동 재개발지역 현장은 이미 포크레인이 동원되어 주인이 떠난 판자촌을 부수고 있었다.
아직도 이 골목 저 골목에는 `아파트 가?` 따위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으나 전처럼 농성하는 주민들은 없었다.
그가 BMW 승용차에서 내리자 현장 사무소에서 소장과 토목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토목 공사는 언제쯤 끝나나?"
"예, 2월 말까지 끝낼 예정입니다."
8척 거구의 김 소장이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그거 너무 늦어. 12월까지 끝내도록 해!"
"시간이..."
"2월까지는 모델 하우스를 완성해야 해! 2월에 분양 신청을 받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밤에도 공사를 해야..."
"밤에도 하면 될 거 아닌가?"
"주택가라 밤에 공사를 하면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무슨 소리야? 주민들 항의가 무서워 공사를 못해? 전쟁도 밤과 낮을 가리면서 해? 기업은 전쟁이야! 전쟁하듯 작전을 세워서 밀어붙여!"
"알겠습니다.!"
"가서 일 봐."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