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8장. 미행 1
최천식 형사는 여자의 어깨 너머로 부옇게 밝아 오는 겨울 하늘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쪽빛 하늘에 희끄므레한 새벽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새벽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철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짜고짜 강철구를 덮쳐 경찰서로 끌고가 닥달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섣불리 연행했다가 아무 소득도 없이 풀어 주면 그러잖아도 껄끄러운 관계인 계장의 눈총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관할도 문제였다.
살인사건이라거나 중용한 시국사건이 아니면 타 경찰서의 관할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어었다.
설사 범죄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해도 관할이 다르면 이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맡을 더듬어 입에 물었다.
스팀이 꺼졌는지 방안에 냉기가 돌고 있었다.
(팔자에 없는 오입 한 번 했군.)
그는 쓴웃음을 짓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았다.
잠결인지 여자가 그는 향해 돌아누우며 팔을 감아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팔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여자의 물컹한 가슴을 느꼈다.
살이 하얗고 머리가 풍성한 여자였다.
얼굴도 그만하면 누구에게 빠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간밤에 그가 강철구와 숏커트 여자가 이 여관 207호실에 투숙한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거머리가 여인의 방을 두드리자, 여자는 맥주까지 준비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팔자 좋으시군."
그는 공연히 낯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빈정거렸다.
여자가 그가 찾아올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팔자 좋으면 이 짓 하고 있겠어요?"
여자가 오프너로 맥주를 따며 말했다.
여자는 숫제 까만 울스커트를 허벅지 위로 걷어올려 놓고 퍼질러 앉아 있었다.
그는 자꾸 여자의 허벅지로 눈이 쏠리는 것을 의식하며 털썩 주저 앉았다.
"목욕 안 할 거예요?"
"목욕은 무슨 목욕..."
"그럼 양복이나 벗고 앉지..."
여자가 눈을 홀겼다.
"오늘 영업 안 할 거야?"
"초친걸 뭐."
"정말 이 짓 한지 10년 됐어?"
"10년이야 되었겠어요?"
"그럼?"
"한 5년..."
"그 동안 걸린 일이 없어?"
"왜 안 걸렸겠어요? 벌써 두번이나 은팔찌 차고 큰집에 다녀왔는데.."
여자가 그는 꺼내 놓은 담배갑에서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라이터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 또 이 짓을 해?"
"재미있구 좋잖아요!"
"좋기두 하겠다!"
그가 빈정거리자 여자가 깔깔내고 웃었다.
"술이나 마셔요!"
여자가 담배 연기를 후우 내뿜고 잔을 들었다.
그도 잔을 들어 여자의 잔에 가볍게 부딪치고 반쯤 마셨다.
여자는 얼추 서른다섯이나 여섯쯤 되어 보였다.
"가족은?"
"없어요. 이혼당했거든요."
"당해?"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하고 정분 났다가 들켰어요.
남편이라는 작자가 칼을 들고 설치는 바람에 죽어라 달아나다 보니까 간신히 팬티 한장만 걸쳤더라구요.
그나마 어떻게 걸쳤는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여자가 지그시 눈을 감고 웃음을 깨물었다.
그는 잔에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여자가 그의 잔에 다시 맥주를 따랐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제 와서 돌아가서 뭘 하겠어요. 이렇게 살다가 말지.."
"사는 건 괜찮아?"
"동가숙 서가식 하다가 늙으면 어떻게 하려고..?"
"늙으면 약 먹고 죽지요..뭐"
"큰일날 소리! 약 먹고 죽으면 누가 뒤치닥거리하는지 알아? 그거 우리가 다 한다구!"
"그러니까 미리 몸으로 보신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액땜도 하구요."
"액땜?"
"형사하고 같이 자면 액을 면한대요. 일하러 나갔다가 형사를 만나면 은팔찌 차는 날이구요."
여자가 곱게 미소를 그렸다.
그는 여자의 싱거운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데 내가 이 여관으로 오리라는 것 어떻게 알았어?"
"난 여자에 주린 남자는 한 눈에 알봐요."
"별 재주 다 있네."
"그런 재주도 없이 어떻게 먹고 살아요? 마시고 목욕이나 하자구요."
"누구 모가지 떨어뜨릴려구 그래?"
그는 짐짓 엄살을 떨었다.
여자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그는 벌써 한 달째 여자의 살이라곤 손 끝 하나 건드려 보지 못한 것이다.
마누라가 교통사고로 죽은지 2년, 처음엔 마누라 죽은 충격으로 욕망을 그럭저럭
잠재울수 있었으나 요즈음엔 거리의 여자라도 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여자가 블라우스가 스커트를 벗어서 차곡차곡 개어 놓았다.
그러더니 시미즈 차림으로 편하게 앉았다.
"강철구 알아?"
"안면 정도로요."
"요즈음 뭐 해?"
"술 마시고 여자 후리고 그러죠 뭐. 오늘도 플로어에 있던데.."
"불야성에 자주 간다며?"
"순천파 관할이니까요."
"이 근처 전부 순천파 관할이야?"
"강철구가 무슨 일 저질렀어요?"
"대학생 살인 사건에 관련이 있어."
"여대생?"
"남학생."
"강철구가 남학생을 왜 죽이죠?
여대생이라면 후리다가 안되니까 죽일 수도 있지만..."
"꼭 죽였다는 것은 아니구."
그는 말 끝을 흐렸다.
강철구가 김민우를 살했다는 심증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김민우 살인사건의 유일한 실마리는 강철구 뿐이었다.
이내 술자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