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10장. 수사 1
그곳은 거여동 주택가로부터 1키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개천이었다.
개천은 가장자리로만 겨우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가운데는 시커먼 폐수가 흐르고 있었다.
둑에는 잡초와 억새풀이 무성했다.
군데군데 쥐불을 놓아 둑이 까맣게 타기도 했고 집단이 쌓여 있기도 했다.
개천 양쪽으로는 겨울 들판이 꽤 넓게 펼쳐쳐 있었다.
그 둑길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농사철에는 마을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가곤 했으나 농사가 끝난 한겨울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침 7시쯤의 일이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나 사방이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그때 부연 새벽빛을 헤치고 젊은 남자 하나가 둑길을 느릿느릿 걸어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양복을 입었으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은 창백해 빈혈 환자를 연상시겼다.
그는 둑 중간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았다.
살을 에일 듯한 추위는 아니었으나 새벽 기온이 제법 차가웠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간반에 직장 동료들과 밤새워 화투를 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돈을 땄으면 택시라도 타고 돌아왔겠으나 몸땅 잃은 처지라 개평 뜯은 돈으로 해장국 한 그릇을 겨우 얻어 먹었을뿐이었다.
밤새워 돈을 잃은 탓에 그는 눈꺼풀이 무겁고 다리에 맥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도끼눈을 하고 기다릴 여편네를 생각하자 저절로 한숨이 나홨다.
그러잖아도 성갈이 곱지 않은 여편네가 길기리 날뛸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는 천처히 걸었다.
여편네에게 밤새워 화투친 변명거리를 궁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적당한 변명거리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직장 동료의 초상, 백일, 돌 따위의 경조사는 써먹을 만큼 써먹어 그런 핑계로 여편네를 구슬릴 수가 없었다.
(제기랄!)
그는 입술을 비틀며 걸음을 재게 놀렸다.
어차피 여편네에게 바자기를 긁힐 바에야 속시원히 화투쳐서 돈 잃었다고 털어놓는 것이 심사가 편할 것 같았다.
밤을 새운 그는 새벽 기온에 몸이 으실으실 떨렸다.
그때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둑이 개천으로 미끄러지듯 경사진 비탈을 짚단으로 무엇인가 엉성하게 덮여 있었다.
그는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짚단 밖으로 희멀건 것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이 사람의 맨발이라고 그가 깨달은 것은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기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여 눈을 부릅뜨고 살펴 보았으나 그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발이었다.
(주, 죽었나..?)
그는 까닭 모를 두려운이 뒤통수를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조심조심 비탈로 내려 가서 그 발을 만져 보았다.
그 발은 이미 꽁꽁얼어 있어 그의 가슴까지 싸늘하게 했다.
(죽은 지 오래 되었어...)
그는 짚단을 들추기 시작했다.
이내 시체의 모습이 일목연하게 드러났다.
시체는 30대 남자의 것이었고 가슴과 복부에 핏자국이 낭자했다.
누군가 살해해서 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개천 주위엔 인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허겁지겁 둑위로 올라왔다.
시체가 무섭지는 않았으나 최초의 발견자라는 사실이 그를 불안에 떨게 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쓸데 없이 오해를 받을 염려도 있었고, 형사들이 오라가라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는 그런 일에 얽혀 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개천둑을 벗어나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후 두 시간이 흘러갔다.
그 동안 그 개천둑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는 높이 떠올랐고 부채살 같은 겨울 햇살이 온 들판에 퍼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먼 신작로에서 개천둑으로 꺽어 들어오는 여자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