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11장. 제 2의 살인 4
여자가 허리띠를 내던지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주먹으로 씻어 냈다.
망치는 욕실 바닥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네 놈이 얼마나 견디나 보자."
여자가 이를 갈며 거실로 뛰어나왔다.
여자는 가방 속에서 조그만 약병을 꺼내 다시 욕실로 돌아와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뭔지 알아?"
여자의 얼굴에 요염한 미소가 떠올랐다.
망치는 공포에 짓눌린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이건 초산이다."
"..."
"색깔은 없으나 독이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만큼 독한 약품이야..."
여자가 초산 한방울을 허리띠 위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하얀연기와 함께 허리띠가 치치칙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이걸 사람의 얼굴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여자가 잔인하게 웃어댔다.
망치는 그것을 보고 소름이 오싹 끼쳤다.
"제,제발...!"
"나하고 내딸을 윤간했지?"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망치는 그제서야 살기 위해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를 윤간한 놈은 누구누구였어? 스타킹으로 복면을 한 놈들 말야?"
"저하구 강철구..., 그리고 박재만입니다..."
"박재만이가 누구야?"
"순천파 일꾼입니다..."
"나이트클럽 크렘린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크렘린에서 기도를 보고 있습니다."
"크렘린?"
"신당동에 있습니다. 생긴 지 석 달밖에 안 됐습니다."
"별명은?'
"족제비입니다."
"인상은?"
"머리가 곱슬머리입니다. 눈이 조그맣구요."
"나를 윤간할 때 여자도 있었잖아?"
"양마담입니다."
"불야성?"
"예, 그렇습니다. 우린 그 여자 지시에 따라서 그런 짓을 했습니다..."
"돈은 받았나?"
"예. 3백만원입니다."
"더러운놈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아주 잠깐 동안 폭풍이 몰아 치던 밤을 생각했다.
그녀와 남편이 지켜보는 앞에서 딸이 윤간당하던 모습을 생각하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망치를 심문하다 말고 욕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그것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었다.
여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희고 뽀얀 살결, 둥그스름한 어깨, 잘록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둔부...
비록 뒷모습이지만 눈이 부셨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망치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그는 여자를 죽이기 위해 여자를 미행하며 이 호텔에 침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여자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여자가 남자를 잡아 놓고 고문할수가 있는가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는 여자가 처음 불야성에 나타났을 때 그들이 폭풍이 불던 밤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윤간했던 여자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다만 여자의 얼굴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자꾸 여자를 처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마담은 여자를 너무나 쉽게 알아보았다.
양마담이 여자이기 때문에 관찰력이 더 뛰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이상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여자는 세 번씩이나 불야성을 찾아와 술을 마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