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여인의 정사 - 14장. 최후의 심판 2
물론 홍보옥이 그곳에 있으리라는 예상을 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홍보옥의 친정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홍보옥의 복수 대상자는 모두 없어진 셈이었다.
그는 이제 홍보옥이 자수해 오거나 자살하리라고 생각했다.
김민희 말대로만 홍옥에게는 복수 외에는 아무것도 삶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삶의 의지가 없다면 죽음밖에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홍보옥의 친정집에는 그녀의 그림자도 발견할수 없었다.
홍보옥은 강철구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친정집과 완전히 발을 끊었다는 공허한 대답뿐이었다.
"난 내딸이 하고 있는 짓일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이해할 순 있습니다."
그것은 홍보옥의 친정 아버지 홍교사의 침통한 이야기였다.
딸을 사랑한 부정이 절절하게 담긴 말이었다.
그집은 홍보옥으로 인하여 집안이 온통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다.
최천식 형사는 막연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피해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천식 형사가 다음에 찾아간 곳은 홍보옥의 시동생이 경영하는 거여동 변두리의 조그만 비디오샵이었다.
그는 두달 전 병원에서 퇴원하여 은 여자와 비디오샵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천식 형사가 조사해 본 결과 그 여자는 한때 풍원건설에서 여비서로 근무한 일도 있었고, 룸살롱 불야성에서 호스테스로 일 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남해안의 조그만 섬에서 몸을 팔고 잇다가 인신매매가 사회문제화되어 경찰의 일제 소탕령으로 구출된 여자였다.
이름이 현애자였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침이라 그런지 비디오 테이프는 한산했다.
"그럭저럭 지냅니다."
홍보옥의 시동생이 그를 알아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경찰의 감시와 미행을 끊임없이 받아 왔었다.
"가게는 잘 됩니까?"
"예. 먹고 살만 합니다."
"오셨어요?"
그때 가게와 딸린 방에서 현애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들은 어디 갔습니까?"
"유치원에 보냈어요."
현애자가 살포시 미소를 그렸다.
그는 현애자를 데리고 근처 아파트 단지의 어린이 놀이터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비가 오고 있어서인지 놀이터도 한적했다.
"보기 참 좋으십니다."
그는 현애자가 아이가 둘이나 있는 홍보옥의 시동생과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이 흐뭇했다.
"글쎄요,"
"유흥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조그만 일에도 행복을 느낄수 있고..."
"네."
현애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재자의 풍성한 머리에 빗방 울들이 안개 처럼 묻어나고 있었다.
비는 어느덧 가느다랗게 세우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났나요?"
"양혜숙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룸살롱 불야성의 마담이었던..."
"기어이 죽었군요. 이번에도 홍보옥씨가 범인인가요?"
"아직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복수는 모두 끝났군요."
"홍보옥씨에게서 또 연락이 없었나요?"
홍보옥의 시동생과 현애자를 맺어준 것은 홍보옥이었다.
최천식 형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네."
"있었다고 해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지요?"
"그럼 왜 찾아오셨어요?"
"그냥 지푸라기도 하나 잡아 볼까 해서지요."
현애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홍보옥씨는 체포되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우선 조사를 받겠지요."
"조사 받은 뒤에는요?"
"재판을 받아야지요."
"형은 어떻게 떨어질까요?"
"검찰은 사형을 구형할겁니다."
"판사는요?"
"..."
"판사도 사형을 때릴까요?"
"그럴 가능성이 많지요. 재판이 어떻게 집행되는가에 따라 다른 긴 하지만.."
"정상 참작이 될까요?"
"복수를 했기 때문에 안될겁니다.
복수라는 행위는 사법제도에 도전을 하는 행위니까요."
"그렇겠군요."
현애자가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천식 형사는 현애자의 헤어지자 백석으로 차를 몰았다.
그것은 혹시라도 홍보옥이 백석 카톨릭 공원묘지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최천식 형사가 백석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장례 하나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최천식 형사는 장례 행렬을 따라 천천히 산으로 올라갔다.
이재우와 그의 딸 무덤으로 가까이 가자 백모련이 한송이씩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홍보옥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기어이 왔다 갔군!)
그는 신음처럼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진작 형사대를 잠복시켰으면 홍보옥을 체포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때늦은 후회였다.
그는 근처에서 묘혈을 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그들은 이곳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홍보옥이 왔다 간 것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많았다.
"수고들하십니다."
삽과 곡괭이로 모혈을 파고 있는 인부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저 옆에 무덤 있지요? 거기 꽃 누가 갖다 놓았습니까?"
"목련 말입니까?"
늙수그레한 사내가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예."
"그 부인이 갖다 놓았습니다."
"언제요?"
"오늘 아침이요. 다녀간지 두시간쯤 되었나?"
"그 여자 자주옵니까?"
"글쎄요. 가끔 오긴 합니다, 대개 비오는 날 하얀 소복을 입고 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 일어섰다.
비 오는 날 흰소복을 입고 온다면 홍보옥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
최천식 형사는 백석 카톨릭 공원묘지에 형사들을 잠복시켰다.
그러나 홍보옥은 열흘을 잠복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최천식 형사는 그 동안 양혜숙 살인사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양혜숙의 국부에서 검출된 정액이 B형이라는 것과 양혜숙의 음모에 섞여 있던 체모역시 B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양혜숙을 살해한 범인이 홍보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양혜숙의 차는 사건 이틀 후 시체 발견 현장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천호동 무지개 연립주택 앞 골목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차에서도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수 가 없었다.
최천식 형사는 전담반과 함께 제 3의 사나이를 추적하는 데 온 수사력을
집중했으나 단서는 양혜숙의 국부에 채취된 정액과 체모뿐이었다.
그것은 양혜숙이 살해되던 날 정사를 벌였음을 의미했다.
추리가 거기까지 확대되자 그는 먼저 양혜숙이 제 3의 사나이와 정사를 벌였을 만한 장소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양혜숙의 사진으로 거여동 일대의 호텔과 모텔, 그리고 여관부터 샅샅이 뒤졌다.
그리하여 1주일째 되던 날 양혜숙이 투숙했던 '아리랑 파크 모텔'을 찾아낸 것이다.
그 모텔의 종업원들은 의외로 양혜숙의 사진을 쉽게 알아보았다.
그것은 양혜숙이 밤 10시쯤 나가면서 팀을 2만원씩이나 주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나이는 풍원건설 경리부장 배명환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