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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창녀를 위한 소나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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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픈! 섹스 사냥시즌 Ⅰ


"그리고 난간에 선 채로 뒤뚱거리는 내 다리에 미선이 키스를 해주었어요.

그녀가 내 다리를 잡고 있지도 않았지만, 불안감 때문에 비틀거리거나 하지 않았고요.

나 스스로 미선의 목을 잡고 내려왔죠. 그리곤 긴 키스를 했어요."


단숨에 말해버리고 나서 주영은 깊은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의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늘씬한 여학생이 담배를 한 대 뽑아 주영의 입에 물려주었다.

하지만 주영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미선 언니는 늘 그런 식이에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주영 언니가 떨어질까 봐 먼저 와락 껴안았을 거예요.

미선 언니는 남의 인생에 관여하길 원치 않아요. 아마 그때 주영 언니가 아파트 주차장 밑으로 떨어졌더라도 잡지 않았을걸요.

그런 사람이에요, 미선 언니는."


"난 그런 건 몰라요."

"왜요? 어쨌든 언니는 스스로 미선 언니를 쫓아서 이곳에 왔잖아요."


주영은 잠시 망설였다.


막연하게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선의 뒤를 따라 들어온 화려한 맨션 안에는 그녀와 여학생, 단 둘밖에 없었다.

왜 미선을 따라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치 지난밤에 꾸었던 꿈을 회상하듯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겨우 두 시간 전의 일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간과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돌아가야 할지 어떨지도 모르겠어요. 미선인 내게 말했죠. `어차피 죽을 거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 내가 도와줄게.` 하구요."


"부럽군요."


진심인 것 같았다.



여학생은 당돌하게도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질투심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있었다.

주영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눈에도 알아볼 정도로 비싼 가죽 소파며 이탈리아 가구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몇십만 원짜리 티셔츠들이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진희의 말대로 어지간한 재벌 집 딸이 아닌 이상엔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궁금하실까 봐 미리 알려드리는데, 전 올해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젠 어엿한 대학생이에요. 명문대죠. 머리가 딸리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름은 최시아.


미선 언니와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한동네에서 자랐거든요. 아니, 일방적으로 제가 따라다녔어요. 미선 언니와 함께 지내려고요.


대학도 가기 싫었지만 미선 언니가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들어갔어요.

난 미선 언니 거예요.


동성애건 뭐건 상관없어요. 난 그 언니만 있으면 돼요.

아쉽게도 저는 결혼의 경험도, 성에 대한 경험도 없어요. 그래서 더 이상 말씀드릴 것도 없고요."



부드럽게 물결치는 커트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시아가 차갑게 웃었다.

희고 고른 치열이 무척 상큼하게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다.

주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

"모르겠어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긴 목을 가진 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한번 물어왔다.

주영은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왠지 시아는 짓궂게도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여긴."

"그만 떠들어. 원하던 걸 가져왔으니까."


현관문을 소리 없이 닫으며 미선이 들어섰다.

시아는 스프링처럼 발딱 일어나 미선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어떻게 나 혼자만 두고 몇 시간이나 버려둘 수 있어요? 애가 타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시아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고 미선의 목에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그녀는 미선 보다 한 뼘 정도 더 컸지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주영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어정쩡하게 일어서서 미선을 맞이했다.


"이리와 주영아."


로봇처럼 주영이 걸어오자 미선은 그녀의 팔에 차가운 금속성의 액세서리를 매어 주었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시아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뱀처럼 길게 휘감긴 은팔찌가 주영의 가느다란 팔목에 매달렸다. 움직일 때마다 뱀의 비늘 같은 모양이 조금씩 요동을 쳤다.

매우 공들여 세공한 팔찌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은이었지만 상당한 값어치일 게 분명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리고 네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당장 보내줄 수 있어.

넌 너의 그 잘난 남편 시중이나 들면서 평생을 자살에 대한 환상 속에서 지내던지, 아니면 다시 그 옥상으로 가서 뛰어내리든지 하면 돼.


이 팔찌는 한국 최고의 세공업자에게 특별 주문한 거야.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팔찌를 끼고 거리를 나서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네게 접근하더라도 절대 거부해선 안 돼.

무엇을 시키든, 어떤 행위를 요구하든, 넌 들어줘야만 하는 거야. 그게 우리의 규칙이야."


"어떤... 행위라도?"

"그래. 그 사람이 널 어두운 골목으로 끌고 가서 팬티를 벗겨내더라도 넌 거부할 수 없어."

"그, 그건."


팔목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팔찌의 감촉이 새삼 섬뜩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주영은 미선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고 애썼지만, 정작 미선의 옆에 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시아의 차가운 비웃음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주영은 고개를 떨구었다.


"난... 그런 건 할 수 없어."

"좋아. 단 한 번의 설명만으로 얘기를 끝내자. 넌 여태껏 남편 이외의 사람과는 섹스를 나눠본 적이 없지?"


"......"


"그럼 네가 지켜온 정조의 기준이 뭐지? 최후의 마지노선 말이야.

내가 네게 키스하고 네가 느꼈던 그 감정은 뭐라고 생각하니? 정조라는 게 과연 뭘까?


입술에 키스만 해도 성행위에 속하는 건가? 아니면 볼에? 아니면 목? 온몸? 푸쉬나 딕?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발기한 딕을 푸쉬에 집어넣지만 않으면 성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도 그런 거겠지?


키스나 애무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 기준을 어느 선으로 잡고 있느냐고 묻고 있잖아.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는 단순히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상상하는 것까지도 허용하지 못하는 수도 있어. 네가 스스로 정한 커트라인은 뭐지?"



주영은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팔찌가 거북한 무게로 팔목을 조여왔다.

그녀가 원하던 것은 미선의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와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는데, 미선은 결코 그렇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타는 듯한 갈증과 심한 상실감이 주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인지는 네가 스스로 알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그 사람들에게 네 정체를 알릴 필요도 없고, 네가 그 사람들을 알려고 해서도 안 돼.

그건 규칙이야. 네가 스스로 울면서 애원하지 않는 한 그들은 네 푸쉬를 침범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섹스가 과연 무엇인지 정도는 충분히 가르쳐줄 테니 마음껏 만끽하도록 해.


너는 평소와 다름없이 네 남편의 시중을 들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면 돼.

하지만 내게 자주 찾아오는 건 자제해.

원치 않을 때는 언제든 팔찌를 내게 돌려주면 그만이야.

만약 어떤 일로든 탄로가 날 경우에도 결코 겁을 먹거나 피할 필요는 없어.

그때는 알아서 다 처리되니까 말이지. 내가 더 이상 해 줄 말은 없어."



그녀를 강제로 겁탈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위안이 되었지만, 부자들의 어이없는 놀이에 농락당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주영은 팔찌를 풀기 위해 오른손을 왼쪽 팔목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언니. 내 것은 없어요?"

"갖고는 왔지만 망설이는 중이야. 너는 너무 성급해. 우리 규칙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지."

"불공평해요!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미선은 시아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으면서 주영의 머뭇거리는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아는 계속 불만이 섞인 투정을 중얼거리고 주영의 팔찌를 탐나는 눈초리로 훔쳐보았다.


"언제나... 이렇게 해?"


주영이 겁먹은 말투로 물어보았다.


"언제나? 그렇지 않아. 은팔찌를 끼워주고 싶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이렇게 하는 거야.

원래 여름엔 하지 않아. 너무 노출되어도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지. 

너에게 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

아무도 너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우리가 이 맨션을 나서서 움직이는 그 순간부터 `지금은 섹스 사냥 시즌`이야."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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