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를 위한 소나타 12
12. 오픈! 섹스 사냥시즌 Ⅱ
팔찌 고리에 손을 가져갔던 주영이 멈칫하며 시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든 관둘 수가 있다는데 집에 가져가서 화장대 서랍에 처박아 두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시아가 저렇게도 탐을 내는 지금, 굳이 이 자리에서 돌려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주영은 입술을 깨물고 팔찌 고리를 푸는 대신에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었다.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해보는 도전적인 몸짓이었다.
미선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네 남편과 헤어질 생각이니?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지?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야?"
"모르겠어. 솔직히."
"네 마음을 잘 알지. 지금 당장 너의 자아를 모두 깨부수진 못할 거야. 지금의 너를 여태까지 지탱해왔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탈피하면 돼. 세상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옥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으니까."
"넌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미선은 하얗게 웃으며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 너무나 당연한 걸 물어보는 구나. 넌.
행복이란 건 별것 아니거든. 행복은 바로 각자가 느끼는 정신적인 만족이야."
아주 조금의 망설임과 설렘, 그리고 불안감을 껴안고 주영은 미선의 공룡 몸집같이 커다란 맨션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시아는 그녀가 나올 때까지도 미선에게 매달려 은팔찌를 달라며 졸라대고 있었다.
미선이 과연 시아에게 팔찌를 주었을지 궁금했지만, 그녀에게 빈틈 하나 없이 달라붙어 있는 시아를 보는 것도 더는 고역이었기 때문에
주영은 미선의 말을 곱씹으며 하릴없이 헤매고 있었다.
물결치듯 사람들의 행렬이 일정한 리듬을 타고 거리 위에서 출렁거렸다.
`세상이 달라 보일 거야.`
정말 미선의 말대로 세상이 바뀔까? 내가 마음먹기에 따랐다고? 그럼 더 이상 수족관 속의 관상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주영은 가끔 진열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멈추어서 미선이 준 팔찌에 어울릴만한 옷을 찾기도 했다.
딕을 여비서의 입에 삽입한 채 신음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에 뭔가 특이한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결국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요란한 무늬를 새겨진 짧은 반바지와 가슴 언저리까지 파인 대담한 티셔츠를 사고야 말았다.
평소라면 가슴이 떨릴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지만, 눈을 질끈 감고 남편의 신용카드를 옷가게 여직원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앞으로 달라지는데 필요한 작은 절차에 불과해.
부모와 남편이 그렇게도 금지했던, 남들이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세상 사는 재미를 나도 느껴볼 거야.`
주영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말아서 근처의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적어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껏 그녀를 옭아매었던 것들은 모두 깨부수고 싶었다.
한결 발랄해진 표정에 쭉 뻗은 다리, 하늘거리는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도톰한 가슴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몇몇 남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곤 했다.
주영은 기분이 좋아져서 섹시해 보이는 까만색들까지 샀다.
가느다란 팔목에 은빛 팔찌가 차갑게 빛났다.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좀 더 용기를 내어 호텔 지하의 바(bar)를 찾아 들어갔다.
"마티니 주세요."
엉덩이를 조그마한 의자에 붙이고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칵테일을 주문했다.
때 이른 퇴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실내는 매우 한가했다.
주영은 투명한 마티니에 담긴 녹색 올리브를 바라보며 새삼 자신의 대담해진 행동에 감탄하고 있었다.
"빛이 고운 실버군요."
한 남자가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솜씨 좋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똑같은 마티니를 주문했다.
그가 주영의 팔목에 채워진 은팔찌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그녀의 나이보다 두 배 정도 연상으로 보였다.
보통의 키에 말쑥해 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귀 옆의 머리엔 세월의 흔적이 보였고, 느긋한 여유가 배어 있었다.
주영은 긴장한 채 살짝 웃어 주었다.
`지금이 섹스 사냥 시즌이야. `
이 남자도 은팔찌를 끼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의 팔목엔 번쩍이는 금시계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마티니를 마셨다.
주영은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만 신경을 집중했다.
"아!"
주영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주영의 드러난 팔에 입술을 누르고 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주영에게 바짝 몸을 기대고 속삭이는 척 가장하고 그녀의 귓볼을 깨물었다.
"정말 시즌이 시작되었군."
피가 거꾸로 역류하고 있었다.
남자의 음성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그는 주영의 손을 잡아 감싸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혀로 핥았다.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말초신경이 모두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나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당장 팔찌를 풀어버려야겠다는 생각과 이대로 어떻게 진행되나 보자는 호기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남자가 싱긋 웃으며 먼저 일어서서 그들이 마신 칵테일을 계산했다.
주영은 생각보다 자신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말없이 남자를 따라나섰다.
"여기가 좋겠어."
주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는 호텔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구 문을 열고 그녀를 밀어 넣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여서 서늘한 바람이 계단을 휘몰아 돌고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계단에 내려놓고 주영의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전신에 짜릿한 쾌감이 훑었다.
남자는 주영의 드러난 어깨와 손까지 부드럽게 쓸어주며 그녀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무조건 껴안고 계단 위로 뒹구는 것인 줄로 예상하던 그녀는 약간의 수치감에 얼굴을 붉혔다.
"귀엽군."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를 그의 혀가 뒤쫓아 핥았다.
그는 마론 인형을 세워 놓듯이 주영을 벽에 밀어 세우고 드러난 허벅지 안쪽을 혀와 입술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주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몸이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