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남자15
“원투! 그렇지!”
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전을 보며 선호가 주먹을 쥔 채로 소리쳤다.
“정신을 못 차리게 계속 몰아 붙여!”
선호가 지르는 고함 소리를 들으며 은서가 가슴에 모은 두 손을 꽉 쥔다. 복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보기에도 이미 시합은 한 명이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한의 상대 선수는 이한이 뻗은 펀치를 막기 급급할 뿐 제대로 된 펀치를 전혀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빠른 펀치에 과하게 얻어맞은 탓에 상대 선수의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부어 있었고 내지르는 주먹이 눈에 띄게 무겁고 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한이 섣부르게 파고들지 않는 이유는 상대의 펀치도 느려졌고 스텝도 엉성해졌지만 언제든지 역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방.’
헤드기어 안에서 이한의 눈동자가 빛난다.
이제 잠시 후면 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것이 마지막 라운드. 이미 이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겼음에도 레퍼리의 손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이미 승자가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거기에 승복하기는 싫다.
상대를 몰아붙이던 이한이 슬쩍 주먹을 늦춘다. 슬쩍 늦춘 주먹으로 상대 선수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순간 이한의 복부가 드러났다.
가드를 올리지 못할 정도로 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비어버린 순간을 상대 선수가 놓치지 않고 펀치를 날린다.
온 힘을 다해 반격하듯이 상대 선수가 이한의 복부로 주먹을 날렸다.
복부에 펀치가 들어오는 순간 이한의 발이 뒤로 물러난다.
비틀거리는 이한을 향해 상대 선수가 있는 힘껏 스트레이트를 날린 것은 그때였다.
- 상대의 주먹을 두려워하지 마. 눈을 똑바로 뜨고 날아오는 주먹을 보지 못하면 카운터는 날릴 수 없어. 눈앞에 주먹이 날아와도 눈 부릅뜨고, 마지막까지 눈 감지 말고!
첫 시합에 나섰을 때 관장이 해주었던 말이 이한의 귀를 스쳤다.
‘눈 부릅뜨고!’
이한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똑바로 쳐다봤다. 피하지 말고,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며.
‘카운터…!’
상대 선수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기 직전 옆으로 뻗어나간 이한의 주먹이 상대 선수의 얼굴을 후려친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운터펀치-!”
선호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이한의 주먹에 얼굴을 가격당한 선수가 비틀거리더니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링 위에 쓰러졌다.
그 순간 체육관 안에 몇 개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잠시 당황하던 레퍼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카운트를 세기 시작한다.
“…10. 녹아웃!”
레퍼리의 아웃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글러브를 집어 던진 이한이 링 밖으로 뛰어 내려갔다.
“앗!”
놀란 것은 은서였다. 심판이 승자의 손을 잡아 올리기도 전에 이한이 링 밖으로 뛰어 내려와 그녀에게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꺄악!”
이한의 두 손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는 바람에 놀란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를 두 팔 안에 안은 채로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돈 이한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은서를 향해 웃는다.
헤드기어 안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웃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은서가 그제야 웃기 시작했다.
“세리머니는?”
“잊어버렸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용서해줄게요.”
그 말을 하며 은서가 두 손으로 이한의 헤드기어를 벗겨낸다.
땀으로 젖어 있는 머리카락에 그녀가 살며시 키스하자 그녀를 내려 다시 품 안에 끌어안은 이한이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했다.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야유를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빨리 링 위로 올라오라고 레프리가 소리치는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하고 지금은 빨리 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선호의 목소리도 소용없었다.
지금은, 이 빛나는 순간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거칠어진 숨소리도, 진한 땀 냄새도 오직 그녀에게 안겨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하고 결혼해줘요, 은서 씨.”
그의 프러포즈에.
“그럴게요.”
그녀가 허락하며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뜨겁게 키스했다. 만약 선호가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라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울지 마요. 다 큰 어른이 왜 울어.”
지원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서진에게 물티슈를 건네준다.
“하여간에 나잇값을 못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지원의 눈가에도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는 것은 비밀.
*
“잘 봐요, 삐뚤어지지 않았어요?”
“괜찮은데?”
“그러게 전문 업자한테 맡기자니까, 괜히 돈 아낀다고 이 고생이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지원이 간판을 고정하느라 비지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카페에 새로 간판을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 작명 센스들이 이게 뭐야? 달콤한 오후? 가게 이름이 이래서 어디 손님이나 오겠어요? 가뜩이나 장소도 안 좋은데.”
“넌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간판을 달기 시작하면서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한 지원을 올려다보며 서진이 한마디 내뱉었다.
“사장님 혼자 망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우리 형까지 덩달아 망하게 생겼잖아요. 애도 둘이나 있는데 망하면 누가 먹여 살리라고.”
“잘나가는 안지원이 먹여 살리면 되지.”
“나도 내 인생이 있다고요~”
먹여 살리라는 말에 지원이 질색을 하며 서진을 노려본다.
몇 달 전부터 동업 얘기가 오가더니 드디어 서진과 이한이 함께 가게를 차리기고 결정해버렸다.
한번 결정하고 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서 가게 이름을 새로 정하고 간판이 오고, 가게 내부 리모델링까지 마쳐 놓았다.
정식 오픈은 다음 주지만 친한 사람들에게는 오늘부터 오픈이다.
서진의 카페와 이한의 베이커리가 합쳐져서 ‘달콤한 오후’라는 이름의 베이커리 카페가 오픈하게 되는 것이다.
근처에 있는 미래 체육관 사람들이 거의 단골이 될 게 뻔한지라 벌써부터 지원의 머릿속에는 적자 계산이 가득하다.
가진 것 없이 마음만 좋은 이한이 분명 덤에 덤까지 얹어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자기가 애 딸린 가장이라는 걸 자각을 못해, 자각을.”
이러다가 진짜 자기가 형수와 조카들까지 먹여 살려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은근히 지원에게 깔려 있다.
물론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은 없다.
올해 초 학교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패스한 지원은 지금 외교부 발령 대기 상태다.
듣기로는 다음 주면 근무지가 정해질 것 같다고 했다.
한번 외국으로 나가면 자주는 여기 사람들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해서 있는 동안 최대한 부대끼려고 노력을 하는 지원이지만, 이 사람들 일처리에는 정말 화가 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가 외국 나가 있는 사이에 이 사람들 다 망할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이랄까.
“삼촌~ 아빠~”
간판을 다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지원과 서진의 귀에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본 아래에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여자 아이가 서 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서진의 딸 세나였다.
“아이스크림 먹고 하세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세나가 두 사람을 향해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활짝 웃는다.
엄마가 재혼하며 서진이 데려오려고 한 세나였지만, 엄마가 끝까지 키우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진이 포기해버린 것이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늘 같은 주말이면 서진에게 와서 하룻밤 자고 가게 되었다.
어느덧 키도 자라고 제법 소녀티가 나게 된 세나에게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 지원이 한마디 한다.
“세나 요즘 예뻐졌네? 연애해?”
그 말에 세나의 얼굴이 빨개진다.
“놀리지 마, 삼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빨개진 얼굴로 웃는 소녀의 눈동자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지원에게로 향한다.
티셔츠가 젖도록 땀을 흘리고 있는 지원이 세나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지원은 알고 있을까.
아빠의 카페에 놀러올 때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지원이 막 소녀가 되어가는 세나의 눈에는 아이돌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남자라는 사실을 지원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어느 소녀의 두근두근한 첫사랑이라는 것을.
“사장님. 나중에 세나 어떻게 시집 보내시려나? 세나 시집 갈 때 사장님 대성통곡하는 거 아녜요?”
서진을 놀리며 지원이 짓궂게 웃는다.
“시집 안 보내. 내가 데리고 살 거야.”
“어구, 딸 바보. 여기저기 딸 바보 나셨네.”
‘여기저기’ 딸 바보라는 말에는 이한도 포함되어 있다.
“딸 바보 한 명은 뭘 하고 있지? 세나야. 이한 삼촌은 뭐하고 있어?”
“삼촌 지금 빵 만들어.”
“그래? 배고픈데 잘 됐다.”
아이스크림의 남은 부분을 전부 먹은 지원이 사다리에서 툭 뛰어 내린다.
지원이 내려오자 서진이 서둘러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다리를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아, 마들렌 냄새다.”
“형 십팔번이네?”
가게 문을 열자 풍겨 나오는 달콤한 마들렌 냄새에 지원과 서진이 동시에 웃었다.
이한이 가장 잘 만드는 십팔번 마들렌이 따끈따끈한 냄새를 풍기며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
“손이 왜 그래요?”
아기를 재우고 온 은서가 이한의 손가락 끝에 붙여진 밴드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갸웃거렸다.
“오븐에 데었어요. 뜨거운 거 깜빡하고 손으로 만져서.”
“괜찮아요?”
“물집 잡혔어요.”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밴드를 붙인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이한이 살며시 웃는다.
“호~ 해주면 빨리 나을 텐데.”
호, 해달라는 눈빛으로 손가락을 내미는 이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서가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호, 안 해줘요?”
고개를 돌리는 은서의 앞으로 얼른 손가락을 내밀며 이한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애도 아니고.”
“희연이는 해주면서!”
“희연이는 애고.”
“나도.”
‘나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외치려던 이한의 말이 쏙 들어간 것은.
“.....”
내민 손가락 끝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따뜻한 은서의 입술에 이한이 그대로 굳어버린 사이 은서가 얼른 입술을 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멋쩍은 표정을 보여주기 싫기 때문이다.
“.....”
은서의 입술이 닿았던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이한이.
“아참, 나 입술도 다쳤어요. 여기도 호.”
호, 하며 입술을 내미는 이한의 입안에 앞에 있던 마들렌을 밀어 넣고는 은서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애가 따로 없는 것이다.
누가 이 철없는 남자를 두 아이의 아빠라고 생각할까. 이래서 연하는 연하라고 은서가 웃어버렸다.
그해, 이한이 선발전에서 이기고 그다음 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메달을 목에 걸고 그때는 정말 반지 세리머니를 해준 이한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던 은서의 품에 아기가 안겨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만약 아기가 아니었다면 올림픽이 열리는 현지에 가서 직접 응원을 했을 것이다.
동메달을 딴 그해에 태어난 첫 아이는 희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 둘째가 태어났다. 작은 고추를 달고 태어난 그 아이의 이름은 희문. 그리고 지금 그녀의 안에는 세 번째 아이가 꿈틀거리고 있다.
지원이 ‘그만 좀 낳아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외로웠던 기억에 한풀이라도 하듯이 집안을 아이들로 가득 채울 야망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에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입안에 들어온 마들렌을 우물우물 삼킨 이한이 빙그레 웃는다.
웃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 마찬가지로 웃고 있는 은서의 얼굴이 들어와 담긴다.
처음처럼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담겨지고 있었다.
“마들렌~!”
문을 열며 들어서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분명 키스했겠지만, 아쉽게도 방해꾼들로 인해 키스는 패스.
*
“불붙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화선에 불을 붙인 지원이 한쪽으로 몸을 피했을 때, 피유웅- 하는 소리를 내며 하늘 위로 올라간 불씨가 밤하늘 그 위에서 화려하고 눈부신 불꽃을 활짝 피워냈다.
그 불꽃이 미처 지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올라가는 불씨와 또 한 번 화려하게 피워내는 눈부신 불꽃. 그 광경을 올려다보던 이들의 눈동자가 불꽃 모양으로 빛났다.
“불꽃놀이다~!”
즐거움 가득한 세나와 희연의 목소리에 이한이 그 주위에 빙 둘러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놀이에 목소리를 높이며 호들갑인 태경과 희문이를 안고 있는 혜주.
건너편에서 자신과 똑같은 모양새로 터지는 불꽃을 쳐다보고 있는 서진.
그리고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쪼그려 앉아 스파클러에 불을 붙이고 있는 지원을 지나치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올 것만 같은 불꽃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은서의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고 눈부시게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는 모두의 눈동자에 저마다의 즐거움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여름에는 밤바다라고 우겨 간판을 단 후 바로 모두와 함께 가장 가까운 바다로 달려온 것이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 있어, 그야말로 밤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밤바다에는 불꽃놀이라고 지원과 태경이 우겨댄 탓에 엉겁결에 시작된 불꽃놀이.
지원의 손에 들려진 채 치지직 소리를 내며 하얗게 타들어가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서의 귀에 지원의 신난 목소리가 와 닿는다.
“구경만 하지 말고 신나게 돌려봐요!”
은서의 손에 불붙인 스파클러를 쥐어준 지원이 희연과 세나의 스파클러에도 불을 붙여주기 위해 돌아섰다.
은서의 손에 쥐어진 스파클러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물처럼 떨어지는 그 하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은서의 귀에서 신이 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희연의 즐거운 비명소리도 조금 멀어졌고, 지원의 시원한 웃음소리도 조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얼굴을 들어 올린 은서의 눈에 조금 멀리 떨어진 곳까지 뛰어가서 각자의 손에 든 스파클러를 빙빙 돌리며 활짝 웃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름 밤바다의 어둠을 하얀 불꽃으로 물들이며 그렇게 해변을 뛰어노는 이들의 모습이 은서의 눈에 들어와서 그녀가 활짝 웃었다.
“얍! 이렇게 하면 별 모양!”
“어? 진짜 그렇게 보이네?”
세나와 희연이 죽이 턱턱 맞아 맞장구를 치며 팔을 빠르게 흔들며 별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터트리는 웃음소리가 불꽃보다 더 눈부시다.
“삼촌도 여기 와요!”
두 여자 아이가 지원을 향해 손을 흔들며 부르는 소리가 스파클러의 치직 거리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나 화장실 좀~”
은서가 그렇게 말해봤지만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있는 이들에게 들렸을지 의문이다.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은서가 환하게 빛나는 그곳을 피해 화장실이 있는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뒤쪽에서 들려오는 요란스럽고 환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살랑거렸다.
“혼자서 어딜 가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득 그녀가 뒤돌아보자 어느새 뒤쫓아 온 이한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나도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 같이 가요.”
환하게 웃으며 이한이 은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가볍게 감싸 안는다.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걸음을 옮기는 이한을 힐끗 쳐다보며 은서가 살짝 입을 연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거 거짓말이죠?”
뻔하다는 듯 쳐다보는 은서를 향해 이한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일 때 이한과 은서의 등 뒤에서 큰 소리와 함께 크고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마지막을 향해, 서서히 그 아름다운 여운을 퍼뜨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 화려한 여운에 걸음을 멈춘 이한과 은서가 밤하늘의 사라지는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빛을 화려하게 밝히고 있는 불꽃의 눈부신 빛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이렇게 눈부심에 감사하며, 함께하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감사해서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아본다.
“사랑해요.”
누가 먼저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새하얀 불꽃의 여운 아래에서 다정하게 끌어안은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어졌다.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살며시 입 맞추는 그 머리 위로 마지막 불꽃이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사랑해요.
불꽃이 터지는 순간 뿐 아니라 사그라드는 그 순간까지 사랑해요.
가장 화려할 때뿐 아니라 여운을 남기며 시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사랑할래요.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가장 멋진 날로 감사하며 사랑할래요.
손을 잡은 그 모든 순간을.
그 여름의 아름다운 밤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맛있는 남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