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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로맨스야설) 유부녀 즐기기 - 아내 덕분에 - 6부

복숭아 0 229 0 0

얼마나 잤을까

콧잔등이 간질거려 잠에서 깼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 아..... 그렇지....)


아주 잠깐 동안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몰랐지만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그녀 덕에 비로소 전 상황이 하나씩 떠올랐다

힘겹게 눈을 뜨고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범인은 그녀의 머리카락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쪽으로 돌아누운 채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자신의 가슴 쪽에 붙이고 최소한의 호흡으로 살아있다는 표시를 하며 나지막이 잠들어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창문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윤곽만 보일뿐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의 오른팔은 그녀가 베고 있었고 왼팔은 잘록한 허리에 올려져 있었다

어떻게 이 자세로 서로 잠들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엔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여인네가 있을 뿐이다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올려 귀밑으로 넘긴다


< 으음.....>


그녀의 호흡이 잠깐, 아주 잠깐 멈칫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낮고 짧은 비음이 이 내 심장 앞에서 울렸다

찰나의 순간 손동작을 멈추고 다시 그녀의 허리 위로 손을 원위치시켰다

이토록 곱고 이쁘게 잠든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오버하지 않은 정숙한 화장기에 일자로 닫혀있는 눈썹,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크기로 오똑 서있는 콧대와 콧방울, 도톰하면서 위로 약간 말려올라간 입술...

참 잘 어울리는 얼굴 조합이었다

코와 입술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녀가 깰까 봐 참기로 했다

또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무거웠던 눈꺼풀에 힘을 빼니 자동으로 두 눈이 감긴다


얼마나 잔 걸까

무언가 내 얼굴을 스치는 느낌에 잠이 깼지만 눈을 뜰 수도, 이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잠이 든다


때르르르르릉~~~


적막하던 작은방에 요란하게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만 낯선 벨 소리였다

팔베개를 하고 내 품에서 잠들었던 그녀가 나보다 먼저 반응하고 부스럭거리며 몸을 돌려 바로 일어났다.


때르때르르르르르르르릉~~~


또다시 길게 벨이 울리고 나는 이 망할 놈의 벨 소리가 모텔 전화기의 소리라는 걸 눈치챘다


< 네....>

< 퇴실해 주셔야 되는데요... 한 시간도 넘었어요>

< 알겠습니다>


머리맡을 더듬거려 수화기를 찾아 최대한 잠든 목소리로 낮게 깔아 대답했고 수화기 너머에선 모텔에 들어설 때 카운터에서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내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머....>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부스스 상체를 일으킨다


< .....시간이 .....>

<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무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이 몇 시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주머니의 휴대폰을 보면 시간을 알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일어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잠시 전 불같은 사랑을 나눴지만 불쑥 알몸을 내보인다는 건 나도 그녀도 아직은 쑥스러울 것이다

어쩔 줄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살며시 일어나며 이불 홑청을 끌어당겨 가슴을 가렸고 뒤쪽에 누워있던 나는 그녀의 가녀린 목선과 곧게 뻗은 등뼈를 감싸고 있는 상반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등도 이쁘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한테도 절한다 했나?

이제 그녀의 모든 것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 7시네요....>


주의를 조금 더듬거려보니 협탁 앞쪽에 시계가 붙어있었고 약한 불빛으로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걱정돼 돌아보며 물었다


< 가셔야 되죠?>


바보 같은 내 물음에 역시나 바보 같은 그녀의 대답이 나온다


< 가셔야죠....?>

< 불.... 켤까요?>


상가의 간판들이 불을 켜서인지 조금 전보다 실내가 약간 밝아진듯했지만 이대로 옷을 입기엔 무리가 있지 싶어 꺼낸 말에 그녀가 의외의 말을 던진다


< 잠깐만.... 조금만 더요...>


말을 끝내기 전에 슬며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며 눕는다. 내게 등을 보이며 누웠지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리는 바람에 그녀의 목덜미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어느샌가 그녀 쪽으로 몸을 틀어 같은 방향으로 누웠지만 혹시 몸의 접촉을 싫어할까 봐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잠을 좀 더 자겠다는 건지 좀 더 안아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맡겨두기로 했다

낯선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든다


< 미안해요....>

< ..........>


무엇이 미안해서 뱉은 말인지 나도 정확히 몰랐지만 정숙한 유부녀를 내 맘대로 간통 현장의 공범으로 몰고 온 것이 맘에 걸렸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러 나온 자리에서 무언의 허락이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그녀를 취했고 벗은 몸으로 같이 누워있는 이 상황이 그녀가 후회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말은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이자 남자라는 동물의 번식 본능으로 이해하라는 비겁하고 옹졸한 변명이었다


날카로운 전화벨이 두 번째 울리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힘겹게 눈을 뜨니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내 코앞에 있었다

순간 당황하여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천정을 향해 몸을 바로 똑 바로 했다. 내 머리를 받쳐주고 있던 건 베개가 아니라 그 남자의 팔이란 걸 알게 되었다

누가 먼저 팔베개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준 이 남자가 고마웠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깊게 잠들 수 있었다

이윽고 옆에서 자고 있던 그가 내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전화기를 집는다


< 네....>

.

< 알겠습니다 >


●●●●●●●


처음 전화기를 집을 때 완 달리 둔탁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무슨 전화인지 궁금했는데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의 휴대폰이 아닌 모텔 인터폰인 줄 알게 되었다

아차!

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지금이 몇 시 정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급히 일어난다고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몸은 생각보다 천천히 움직여졌다

다행한 것이 몸을 일으키며 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 가슴이라도 가릴 생각으로 이불을 슬쩍 잡아당겼고 자연스레 한쪽 다리가 접혀져 허벅지가 침대 바닥에 닿았을 때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내가 쏟은 애액이란 걸 눈치채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 세상에나....)


갑자기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 인지는 모르겠지만 극도의 쾌감으로 오늘 처음 본 외간 남자랑 살을 섞었고 이렇게까지 나 자신이 섹스의 맛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서로의 온몸을 빨고 핥고 주무르고 만지며 미친 듯 섹스를 했다지만 이제 그 여운조차 식어버린 와중에 이 남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졌다

잠깐 동안 오늘 하루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평소 남편에게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내 육체의 반응이 이토록 뜨겁게 불살라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몇 잔의 술과, 분위기와, 의도하지 많았던 일탈, 매너 좋은 애무로 내 몸속 깊은 반응을 끌어올려 알게 해준 이 남자에게 감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 시간이.....>


그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다

핸드백 속에 휴대폰을 꺼내면 알 수도 있겠지만 등 뒤의 이 남자가 내 몸을 훑고 있는 상황에 섣불리 내가 먼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부끄럽다기보다는 한번 관계를 가졌다고 불쑥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개념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싫었다

그건 결혼 전 20대 젊은 여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치부해버린다


........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7시라면 남편이 집에 오기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나가 집안까지 내가 먼저 도착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려면 지금쯤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

으스스 한 냉기가 온몸을 한 바퀴 휘감고 등 쪽에 모여있는 듯하다

조금만 더 눕고 싶었지만 그가 가야 되잖냐고 묻는다

볼일을 끝냈으니 이제 각자 와이프와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로 들린다

한 번 더 그의 의중을 물으려 내가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는 내 마음을 모르고 재촉하듯 말한다


< 불 켤까요?>


가려고 마음먹은듯했다

약간의 서운함과 배신감이 교차하며 복잡한 머릿속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잠깐만 더 있자고 말한다

이불을 최대한 끌어올려 머리까지 덮으려 했지만 무엇에 걸려서인지 얼굴 위로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남자 쪽으로 몸을 돌리려다 오래 사귄 커플들에게나 어울릴 것이고 왠지 한 번 더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봐 반대쪽으로 누웠다

유치했지만 그에게 삐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목덜미가 노출되니 차가운 한기가 더욱 느껴진다

이럴 때... 따뜻하게 어깨라도 감싸주면 좋으련만 잠깐 부스륵거리곤 내게 미안하고 한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할까....

나를 강간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고의적으로 유혹한 것도 아닌데 저 남자는 왜 나한테 미안하다는 표현을 할까...

혹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여자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지었기에 하는 말인가...


( 그래..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


하룻밤의 섹스 상대로 여기던, 생리 욕구를 풀고 싶어 안달 난 수컷의 발정이었다 해도 나만 좋았으면 됐다고 자위한다

아니, 섹스 자체의 행위가 이토록 황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줬으니 이 남자의 임무는 완벽히 소화했다

또한 나 역시 한 번도 그의 손길을 제지하지 않았고 따라왔으니 미안할 게 있다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


얼떨결에 그녀의 뒤로 따라누웠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그녀도 가정이 있고, 자칫 오늘 일로 부부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미안한 마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를 받아줄 처지는 더욱 아니었다

이불 속으로 그녀의 몸이 가볍게 진동한다


( 추운가? )


이불을 좀 더 끌어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목덜미까지 완전히 덮어주고 이불이 움직이지 않도록 살며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주위는 어두웠지만 욕실의 전등을 켜니 방안까지 환해졌다

욕실 쪽으로 향해누운 그녀가 나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욕실 앞 화장대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있던 수건을 들고 문을 닫았다

샤워기의 물이 어깨부터 배를 지나 다리로 흐르니 온몸이 미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배꼽 주위와 가슴 쪽엔 정액 덩어리가 말라붙어있었고 물건은 허연 가루와 섞여 볼품없이 작아져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크지 않은 이놈의 물건으로 그녀를 흥분시키고 사정시켰다고 생각하니 괜히 뿌듯해진다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말리며 밖으로 나가니 그녀가 옷을 입고 앉아있었다

난 적잖이 당황했고 나의 모습에 그녀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준다

부랴부랴 옷을 입으며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감상한다

낮에 길에서 처음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 맞아... 저 모습이었어)


어느덧 다시 정숙한 한 여자의 아내로 돌아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를 보니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

얼추 옷을 입고, 집에 가서 씻겠다는 그녀의 앞에 서서 손을 잡아 일으킨다


< .........>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멈칫하던 손이 그대로 따라오면서 그녀가 내 앞에 서게 되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살며시 내 쪽으로 당겼다


< 미안해요... 늦었죠?>

< .......>

< 그리고 고마워요...>


그녀를 알게 해주고 나에게 몸을 주고 지금 나를 기다려준 그녀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그녀의 두 팔이 내 어깨에 걸쳐진다


●●●●●●●


이불을 덮고 나니 사각 사각한 이불보가 차갑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린다

더 이상 끌려오지 않던 이불이 스르륵 내 목까지 덮혀지곤 남자가 일어서 욕실 쪽으로 걸어간다

뒷덜미가 한결 포근해짐을 느끼며 아빠가 아이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 그래도 자상하긴 하네...)


욕실의 불이 켜지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사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의 정면으로 쏟아지는 조명으로 앞모습이 제대로 노출되었다

적당히 벌어진 어깨, 가슴근육은 마흔 살까지 보이진 않았지만 나잇살인지 도톰히 나온 뱃살이 귀엽게 느껴졌다

무엇을 찾는지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가 화장대 위에 있던 수건을 들고 문을 닫는다


( 응? 저건 내가 쓰던 건데?)


그를 불러 새 수건을 주고 싶었지만 내가 눈을 뜨고 있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샤워기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샤워 모습이 마치 욕실 벽을 투시해 보이는듯하다

방금 전 욕실 앞에서 전라의 모습 그대로 샤워기 앞에 서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시큼했다

서둘러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 이불을 들쳐 침대 바닥을 살피고, 몸에 묻어 말라있는 그의 정액을 대충 손바닥으로 비벼 털어내곤 속옷을 찾아 입었다

평소 어쩌다 남편과의 섹스 후엔 곧바로 샤워를 했었지만 오늘 이곳에서 그에게 몸을 보이며 샤워하기 싫었고 얼른 집에 가서 씻을 요량이었다

그가 나오기 전에 옷을 모두 갖춰 입고 요란했던 침대 끝자락에 앉아있었다


( 불을 다시 꺼놔야 할까?)


그가 나오면 민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탠드 조명을 끄자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도 동시에 멈추고 잠시 뒤 그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 문을 열고 나온다


< 이런...>


잠시 당황스럽다는 듯 남자는 머리를 털던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렸고 어중충하게 자신의 옷이 있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난 일부러 시선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봤고 그는 서둘러 옷을 입는듯했다


< 씻... 안 씻으세요?>

< 집에 가서....>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고 집에 가서 씻는다는 말에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이 시간이 어색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옷을 다 입었는지 내 눈앞에 그가 다가오곤 내 손을 잡는다

어찌하라는 건지 몰라 멀뚱거리며 그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알고 그대로 따라 일어났다

갓 깨어난 병아리 안듯 그가 나를 당겨 안아준다


< 미안해요.. 늦었죠?>

< ....>

< 그리고 고마워요..>


눈시울이 핑~ 돌 뻔한걸 억지로 참았다


( 그래... 이 남자... 나를 싸구려 창녀 취급한 건 아니었어....)


그가 고마웠다

답례를 하듯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살며시 가슴에 기댄다


●●●●●●●


그녀로부터 연락이 온건 3일 뒤였다

처음 그녀를 품은 날 집 앞에 올 때까지 그녀는 마주 잡은 내 손을 놓지 않더니 차가 정지하자 손등에 키스를 해주곤 서둘러 아파트로 들어갔다


< 제가 연락드릴게요...>


이 한마디를 남기곤 3일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문자라도 넣고 싶었지만 그녀의 상황을 모르는 나로서는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남편이 눈치챈 건 아닌지...

그날을 후회하고 연락을 끊으려는 건 아닌지.. 3일이 3년처럼 지나간 늦은 오후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잘 지내시죠?>


그녀를 내려주곤 혹시나 해서 저녁엔 전화기를 무음으로 하고, 출근하는 차 안에선 최대 크기로 볼륨을 키워논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길 지경이었다

띵똥! 울리는 메시지 음에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갔다

그녀의 문자였다

집 나간 막내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기뻤다


< 윤주 씨는 별일 없었어요? 괜찮은 거예요?>

< 네... 조금 아팠어요..>

< 네? 어디가 아팠길래요? 병원엔 가셨어요? 많이 아픈 거예요? 지금 전화 통화 괜찮아요?>

< ㅎㅎ천천히 물으세요~ 10분이 따 전화드릴게요>


아팠다면 지나친 긴장으로 몸살이었을 확률이 많았다

날 만나서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 온통 온몸에 힘을 주어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었다

비록 문자였지만 웃는 글자도 있었기에 많이 좋아진 거라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무실을 나섰다

대충 주변 정리를 마치고 야외 계단으로 나와 한 손엔 휴대폰을, 한 손엔 담배를 들고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때르르르~


벨 소리가 한 번을 다 울리기 전에 전화기를 터치했다


< 윤주 씨 어디가 아픈 거예요?>

< 뭐? 윤주? 또 언년 전화를 기다리냐?>


!!!!!!!!!!!!!

아내 전화였다

급한 마음에 발신자를 확인 안 한 게 잘못이었다


< 아... 당신이야? 아.. 저.. 설계 실 미스 박이.. 아파서 안 나왔는데 좀 전에 통화하다가 끊어졌거든..>

< 그래도 그렇지 마누라 전화보다 반갑게 받는 게 수상하다?>

< 수상은... 젠장.. 왜 전화했는데?>

< 나 오늘 늦어! 염병할 사장 새끼가 각 매장의 점장들 긴급회의래. 8시까지 다 들어오래! >

< 그... 그래? 할 수 없지 머... 얼마나 늦는데?>

< 가봐야지, 보나 마나 매출 가지고 지랄할 테고 실적적은 매니저들 개 박살 날 테고 서너 시간 혼자 떠들다가 단합대회 한답시고 밥이나 먹고 가라면서 지 좋아하는 역삼동 알지? 여동생이 하는 횟집! 거기 가서 술 처먹겠지 머! 미리 간다는 년은 죄다 찍히잖아>

< 알았어! 너무 늦지 마>

< 어째 고맙다는 분위기냐? 윤주랑 스케줄 잡니?>

< 거참 아니래도... 끊어! 전화 들어온다>

< 조심해라 검사할 거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아내는 평소에도 거침없는 말발로 어디, 어떤 사내들과도 지지 않는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말까지 더듬거려 조금은 의심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오늘 밤은 내가 딴짓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섹스를 시도해선 정액 양을 확인하려 덤벼들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통화가 끝나자 다시 벨이 울렸고 이번엔 그녀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받았다


< 네... 윤주 씨>

< 안녕하셨죠..>

< 안녕 못했어요. 걱정도 되고 혹시나 제가 잘못한 게 있나... 먼저 연락할 수도 없었고..... 답답했어요 무지무지>

< 미안해요.. 열이 나고 몸살이 걸려서 꼼짝 못 했어요..>

<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요?>

< 지금은 좋아졌어요.. 걱정하시게 해서 미안해요..>

< 아니에요.. 제가 미안한걸요.. 그날 저녁 쪼끔 추웠나 봐요>

< 네...>

< .....>


전화기 건너편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 윤주 씨.... 많이 보고 싶었어요...>

< ...........>

< 내리면서 연락 주신다는 한마디에 사정이 어떤지 감히 제가 먼저 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 며칠이... 많이 답답했어요...>

< ............>

< 너무 보고 싶었고... 혹시 집에서 잘못된 건지... 걱정했는데... 이제 됐어요>

< 미안해요....>


한참 동안 나 혼자 떠들었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윤주 씨... 오늘... 볼 수 있을까요?>

< 저... 오늘은 일찍 와야 해요....>


오늘은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한참을 머뭇거리곤 마침내 허락한다

날아갈 듯이 기뻐서 큰소리로 재촉한다


< 그래요.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어요. 그쪽으로 갈까요?>

< 아뇨... 제가 나갈게요>

< 그럼 시청 뒤 큰 사거리 지나 주택가에 커피숍 있어요. 전 5분이면 도착합니다>

< 알겠어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 텐데..>

< 제 걱정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전 먼저 커피 한잔할게요>

< 네....>


●●●●●●●


그 사람이 동네에 날 내려주고 난 후부터 온몸이 뻐근하고 나른하더니 급기야 침대 위에서만 3일을 지내야 했다

몸살이었다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두병이나 마셨고 술기운에 나른하던 몸이 갑작스레 경직되고 긴장한 탓이었으리라

이불을 덮어도 덮어도, 가시지 않은 한기와 등, 배, 다리, 어깨 곳곳에 이불 조각이나 머리카락 한 오랜만 스쳐도 그 부분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저녁 늦게 퇴근한 남편은 어디 아프냐는 말 한마디뿐, 차려놓은 밥상에 몇 번 숟가락을 들곤 욕실로 들어간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않고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감기 옮는다는 핑계로 작은방에서 자겠다고 사라진다

그나마 고마웠다

옆에서 자려면 누워있어도 자주 몸을 뒤척이는 잠버릇에 내 살갗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알아서 따로 자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또한 아직 내 몸에 남아있는 그 남자의 체취를 남편이 눈치챌까 봐 불안했었고 모텔에서 씻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 나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아니, 코에서 나오는 뜨거운 숨이 베개에 튕겨 내 얼굴 피부에 닿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난 움직일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번 소변보러 억지로 일어나 환자처럼 주위의 모든 사물을 잡고 화장실만 다녀올 뿐 먹는 것도 없었고 물조차도 이틀 동안 한 컵 마실 수가 없었다

3일째되는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고 힘들게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 그남자......)


이제 좀 살만해졌나?

며칠 전 온몸을 뜨겁게 달궈준 그 남자가 생각나 급히 휴대폰을 찾아열어 봤지만 스팸문자 한 통 외엔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전화 건 사람이 없었다

내 존재감이 이리도 없었나...

3일 동안 세상과 동떨어져 지냈다는 게 서글펐고 이대로 죽었어도 시체나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 내가 먼저 연락한다는 말에 기다리는 건가? )


말은 그렇게 했어도 문자 한 통 와있지 않은 게 서운했다

3일 동안 죽을 만큼 아팠던 게 서럽기도 했고 알아주는 사람 없어 창피하기도 했다

아팠다는 내 문자에 그 남자가 적잖이 놀란듯했다

아파 누워있는 동안 이 남자는 하루 종일 내 연락만 기다린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진 않았구나.. 어떤 의도인지 나도 모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저... 오늘은...일찍 와야해요..>


볼 수 있냐는 그의 물음에 오늘은 안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 몸의 기운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을뿐더러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내가 봐도 얼굴이 많이 망가진듯했다

하지만.. 끝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나는 지금 화장대 앞에서 횅해진 내 얼굴을 조금이라도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무언가를 덕지덕지 바르고 있다

아직 손을 들을 힘도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나가서 그를 만나는 게 남편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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