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유부녀 즐기기 - 아내 덕분에 - 1부
때르르르르릉~~~~~~
<여보세요>
<이지훈 씨죠? 여기 XX 경찰서 XX 지구대 김 경장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세요?>
<5678번 차주 맞으시죠? 뺑소니 신고가 들어와서 그러니 지구대로 잠깐 오셔야겠습니다>
5678번이라면 내명 의의 차지만 아내가 타는 차였고 아내는 오늘 쉬는 날이라 집에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당신 사고 내고 뺑소니쳤어?>
<무슨 뺑소니.... 그년이 뺑소니로 신고했대?>
아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다
<나 경락 받는 곳 있잖아..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데 그년 차가 가운데를 넘어서 오잖아.. 비켜서 지나가는데 긁었어>
<그래서?>
<뒤차도 있고 일단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데 그년이 안 나오길래 그냥 왔지... 미친년 왜 안 나오고 지랄이야>
<허 이거... 그래서 그냥 온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럼 어떡해... 3시까지 미용실 예약돼있는데>
<알았어... 지금 경찰서 가는 길야 갔다 와서 전화할게>
<나는 안가도 돼? 미안...>
<하이구... 인간아.... 암튼 끊어 봐>
아내와의 전화를 끊고 지구대로 향했다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걸리는 일이 있으면 빨리 처리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 미루지 않았다
가는 길에 음료수도 한 박스 사서 지구대로 들어갔다
<저... 5678번 사고 때문에 왔습니다>
지구 대안엔 2명의 경찰이 있었고 두 명 다 업무에 열중이었다
가까이 있는 경찰에게 말을 건넸고 일부러 뺑소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 네 이리로 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이거....>
<뭘 이런 걸 사 오세요...>
책상 위에 음료수를 놓고 자리에 앉으니 그 경찰은 마우스를 끄적이며 말했다
<일단 CCTV를 보시죠>
<네>
<저 건물 지하주차장입니다>
경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지구대와 정면에 있는 6층짜리 건물이었다
나도 아내와 같이 몇 번 들어갔던 곳이었다
모니터를 보자 그 건물 CCTV로 보이는 화면이 켜지고 이윽고 아내 차와 상대방 차로 보이는 흰색 소나타가 보였다
<이차도 반을 넘어있었지만 사모님 차가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경찰이 마우스로 아내 차를 동그랗게 가리키면서 상황을 설명한다
아내는 좁은 공간에서 거의 맞닿아있는 차를 움직이며 억지로 가려 하고 있었다
<허허.... 참 내...>
난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일단 뺑소니 신고로 접수됐지만 차주분이 오셨고 두 분이서 합의를 보시면 별일 없을 겁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여기 1234번 차량 전화번호입니다>
경찰이 쪽지를 내밀고 거기엔 이름과 차 번호,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이거 바쁘실 텐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하 사모님 운전교육 다시 받으셔야겠어요>
<네네 죄송합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메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아 네..조윤주씨세요?>
<네 그런데요>
목소리는 이뻤지만 마치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듯 조금은 쌀쌀맞고 냉랭한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조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사고 났던 차량의 남편입니다>
<그래서요?>
<경찰에선 양쪽이 합의만 보면 된다는데..>
<무슨 합의요?>
여전히 차가운 말투였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고 유리한 입장이기에 초장에 기세 잡으려는 심산 같았다
<지금 파출소에서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어디 다치신데는 없으신가요?>
<다치기는요...>
갑자기 여인의 말투가 수그러들었다
하긴 그 사고로 아프다고 하면 니가 사기 치는 거지...
<다행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내가 경험이 없다 보니 그 상황이 무서웠나 봐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
<차는 많이 상했나요?>
<뒷문이 조금 긁혔어요>
<속상하셨겠어요... 새 차 같던데>
<뭐... 그렇죠... 그쪽 차는 어떠세요?>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은 듯 내 차를 묻기까지 했다
필시 나쁜 사람은 아닌듯했다
<허허.. 앞쪽부터 맨 뒤까지 4차선이 그어져있네요 후후>
<어머 어떻게 해요..>
진심인지 가식인진 몰라도 자신의 차보다 많이 상했다는 말에 놀라는 말투였다
<차는 고치면 되죠... 사람 안 다친 게 다행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경찰에선 뭐라고 하나요? 내려서 얘기만 했어도 신고하진 않았을 텐데...>
<하하하 저라도 신고했을 거예요... 도망간 사람이 나쁜 거지>
<죄송해요...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제가 귀찮게 하고 시간 뺏은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벌금 나오고 면허정지 같은 거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
<다행이네요... 어떻게 합의하는 건가요?>
<경찰은 과실 판결을 내려주지 않아요... 보험사에 각자 의뢰하던지 사비로 고치든지 해야죠>
<네에.....>
여인 역시 이런 일이 처음인 듯 걱정스럽다는 듯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고 나는 사고처리하러 나온 보험사 직원처럼 술술 얘기했다
<그쪽 차는 제가 볼 땐 20만 원 정도면 고칠듯합니다... 보험사에 연락하기보단 사비로 고치는 게 이득일 거고요>
<.............>
<물론 억울하시겠지만 보험사에 의뢰하셔도 과실은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1234차와 제 차의 수리비를 합해 과실비율로 각자 보험회사에서 지급하는 거죠>
<네에.....>
<제 차는 어쩔 수 없이 보험처리해야겠어요... 많이 나올듯싶어요>
<네에.....>
<일단 좀 더 알아보시고 이번 호로 다시 연락 주세요>
<네... 그럴게요 남편하고 상의해 보고 전화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오늘 일 액땜이다 생각하시고 편안히 주무세요>
<호호.. 감사합니다.. 끊을게요>
짧았지만 여인은 마지막에 웃음으로 끊었다
다행스러운 건 사납게 덤벼들면서 차고 쳐내라 병원비, 위자료 내라 안 해서 좋았다
남편하고 상의하고 나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쁜 사람 같진 않아 보였다
띠리리리리리....
<여보세요>
<아 네..조윤주씨세요?>
<네 그런데요>
내 이름을 묻는 걸로 보아 아까 뺑소니차와 관련된 사람인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싹싹하게 대해줄 필요는 없어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조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사고 났던 차량의 남편입니다>
<그래서요?>
<경찰에선 양쪽이 합의만 보면 된다는데..>
<무슨 합의요?>
남자는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처음부터 기를 잡아 내 쪽으로 유리하게 해야 했다
<지금 파출소에서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어디 다치신데는 없으신가요?>
일단 남자의 매너는 좋았다
크든 작든 사고가 나면 사람 안 다쳤는지 물어보는 게 순서인데 이 남자는 내가 안 다쳤는지부터 물어본다
갑자기 처음부터 쌀쌀맞게 대한 게 후회된다
<다치기는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의 톤이 내려갔다
그래도 이 말투는 아닌데....
<다행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내가 경험이 없다 보니 그 상황이 무서웠나 봐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태도가 너무나 정중했고 진심으로 아내 대신 사과하는듯했다
<속상하셨겠어요... 새 차 같던데>
<뭐... 그렇죠... 그쪽 차는 어떠세요?>
난 생각 속에 머물던 말을 무심코 꺼냈다
내 차는 가만히 있었고 그 여자 차가 움직이며 전체를 긁는듯해서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허허.. 앞쪽부터 맨 뒤까지 4차선이 그어져있네요 후후>
<어머 어떻게 해요..>
난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차상태가 안 좋은듯했다
얼떨결에 나온 내 말에 나도 놀랬다
<차는 고치면 되죠... 사람 안 다친 게 다행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경찰에선 뭐라고 하나요? 내려서 얘기만 했어도 신고하진 않았을 텐데...>
●●●●●●●
사실 처음부터 신고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주차하고 내 차 상태를 확인 후 아무리 둘러봐도 상대방 차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 어디쯤 세워서 나와야 할 판인데 보이질 않았고 밖에 나가 확인해 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슬금슬금 약이 올라 관리실에 가서 CCTV를 보고 차 번호를 적어 마주 보이는 파출소에 신고한 것이다
<하하하 저라도 신고했을 거예요... 도망간 사람이 나쁜 거지>
남자는 이후로도 사고처리나 비용 등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런 일이 흔하지 않는 가정주부로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상대방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오늘 일 액땜이다 생각하시고 편안히 주무세요>
마지막엔 내 생각까지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잘 자란다
내 남편 같았으면 과연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해 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호.. 감사합니다.. 끊을게요>
처음 쌀쌀맞게 대한 게 미안하다는 듯... 괜찮으니 그쪽도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가볍게 웃으며 끊었다
다행스러운 건 사납게 덤벼들면서 니가 잘 했니 내가 잘 했니 안 해서 좋았다
남편하고 상의하고 나면 뭐라고 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나쁜 사람 같진 않아 보였다
저녁 늦게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지만 피곤하다며 씻고는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야 하고 정말 그 남자 말대로 각자 자기 차를 고쳐야 하는 상황인지를 물어봐야 했다
차는 어디다 맡겨야 하는지... 답답했지만 붙잡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 홀로 앉아있는 거실의 소파는 음산하기만 하다
벌써 3년째 남편은 나를 거들떠도 안 본다
차라리 욕하고 싸우는 게 낫지 한 지붕 한이불 아래서 남남처럼 지내는 건 정말 지옥 같았다
여자가 생겼냐고 해도 아무 말이 없고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냐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여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매달 통장으로 적지 않은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걸 보면 여자도 회사문 제도 아닌듯했다
여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내처지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문득, 낮의 그 남자 목소리가 떠올랐다
씩씩하면서 또박또박, 때론 정감 있는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대해주었다
내 남편이 그 남자 같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
다음날 출근 후 간단한 일처리를 한 후 커피 한 잔을 뽑는 중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어제....>
<아...네 안녕하세요>
그녀가 다소곳한 말투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보다도 한층 차분해진듯했다
<잘 주무셨어요? 남편분하곤 상의해 보셨나요?>
<네에... 그냥 각자 고치는 걸로 하라네요>
<그렇군요.. 저도 어제 차 맡기고 왔습니다... 차는 맡기셨어요?>
<그게... 50만 원 달래서 아직 안 맡겼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아는 공업사에 물어볼까요?>
<그래도 되겠어요?>
<괜찮습니다... 언제쯤 볼까요?>
<전 아무 때나 괜찮은데... 괜히 시간 뺏는 건 아닌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12시쯤 사거리에서 볼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죠>
약속을 하고 나니 괜히 선심 쓰는 게 아닌가 우습기도 했다
만약 상대방이 남자였어도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심 그녀가 궁금하기도 해서 나가보기로 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이었다
10분 전쯤 약속한 장소에서 차를 세운 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을 즘 길 건너에서 그녀의 차가 유턴하려는지 깜빡이를 켠 채 신호 대기 중이었다
짙은 선팅이 되어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윤곽이 느껴졌다
이윽고 차가 유턴해 내차 뒤에서고 그녀가 내리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 여자구나.....)
얼핏 보아 30대 후반에서 40초 반쯤으로 보였다
상큼한 커트머리에 카디건을 입고 그리 길지 않은 회색 스커트 차림이었다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내면에 상당한 세련미가 보였다
피부는 잡티 하나 없었고 도톰한 입술은 립스틱 색깔과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이지훈입니다>
난 명함을 내밀며 정중히 인사했고 그녀도 두 손으로 명함을 받으며 대꾸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한 5분쯤 가면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네에....>
차에 타 룸미러로 뒤를 보니 그녀도 출발할 채비를 갖춘듯했다
●●●●●●●
다음날 여전히 남편은 정시에 출근하고 집안일을 끝낸 후 전화기를 들었다
(어떻게 얘기하지?)
(남편한테 말도 못 했다면 무시하지나 않을까?)
(차는 어떻게 한다고 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버튼을 누른다
어제저녁 잠시 생각했던 그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어제....>
마치 죄지은듯한 목소리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남편하고 상의했냐는 남자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처음 그 남자가 말한 게 떠올랐다
<네에... 그냥 각자 고치는 걸로 하라네요>
그게 차라리 편할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남자가 처음 얘기한 대로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차는 맡겼냐는 물음에 얼떨결에 50만 원이라고 했다
남자는 적잖이 놀라는 투로 자기가 아는 집에 가보자고 했다
약속을 잡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피해자 차를 가해자가 싸게 고쳐준다고 만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나는 수리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아니, 관심도 없었지만 알아볼 용기도 없었다
알아봐 준다고 나온다는 그 남자도 그랬고 부탁한다고? 아나 가는 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만약 상대방이 여자였어도 이런 부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심 그 남자가 궁금해 나가보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2시간여밖에 안 남았다
여자가 준비하고 시간 맞춰 나가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후루룩 옷을 벗고 샤워하는 내 모습에, 평소 하지 않던 화장을 진하게 하는 내 모습에, 향수를 뿌리는 내 모습에, 속옷과 겉옷을 놓고 세트로 맞추려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랬다
어린아이가 첫 소풍을 갈 때의 심정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이었다
약속시간은 10분쯤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신호 대기를 하고 약속 장소를 쳐다보니 그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검은색 양복을 입고 담배 피우는 모습이 의외로 멋있어 보인다
(저 남자구나.....)
얼핏 보아 4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
정갈하게 다듬은 머리카락과 진한 눈썹이 조화를 이루었다
<안녕하세요... 이지훈입니다>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며 그가 명함을 내민다
XX 건축회사 대표이사 이지훈
사장이라 시간을 편히 낼 수 있었겠다 싶어 다행으로 생각했다
양복이 참 잘 어울린다고 머릿속에 그리며 그 남자의 차를 따라갔다
●●●●●●●
<부장님 얼마나 나오겠어요?>
<하이고 사장님이 아는 분이니까 싸게 해드릴게요 25만 원만 주세요>
<그래요.. 잘 좀 부탁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차는 이따 6시쯤 찾으러 오세요>
<땡큐~>
이곳 공업사는 내가 10년쯤 단골로 다닌 터라 부장이나 이하 직원들도 잘 아는 편이었다
그녀 앞에서 반이나 깎아주었으니 내 체면은 섰으리라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식사 안 하셨죠? 차는 6시에 찾으라니까 식사나 하시죠>
<그래요... 제가 대접할게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제가 사드려야죠>
<이사장님은 아니죠... 후훗>
내 호칭을 이사장이라면서 수줍게 웃는다
마치 너 말고 네 마누라 때문이라는 듯...
역시 근처에 자주 가는 정통 횟집으로 갔다
입구에 넓은 홀을 빼곤 전부 조용한 룸으로 되어있어 사업상 자주 오는 곳이다
역시 근처에 자주 가는 정통 횟집으로 갔다
입구에 넓은 홀을 빼곤 전부 조용한 룸으로 되어있어 사업상 자주 오는 곳이다
<어머 사장님 오셨어요? 이쪽으로...>
<네.. 장사 잘 되시죠?>
<그럼요... 덕분에요>
안쪽 4인용 자그마한 룸으로 안내되고 특 회정식을 시켰다
<손님 모시고 자주 오는 곳입니다... 이곳도 10년 됐을 거예요>
<네에...>
<굉장히 미인이세요... 전 깜짝 놀랐어요>
<아유 아녜요... 미인은...>
<정말입니다 스타일이 너무 좋으세요...>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듯 약간 고개 숙여 대답했다
여자는 칭찬에 약하다
이쁜 여자한테 이쁘다고 해주면 약이 되지만 안 이쁘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이쁘다고 하면 독이 된다
이 여자는 자신이 이쁘다는 걸 알고 있다
이쁘다 멋지다 해주면 좋아할 여자다
내심 뭔가를 기대하게끔 만드는 여자다
한 번 더 띄워준다
<저는 올해 딱 40 됐어요... 아내는 한 살 어리고요>
<어머 저 둔데...>
<그래요? 하하 이거 동갑이었군요... 저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어요>
<아이 참... 아니라니까요>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준비한 음식이 들어왔고 한상 가득히 펼쳐졌다
<이것 좀 들어보세요... 전 이 집이 회를 이렇게 두툼하게 썰어줘서 참 좋더라고요>
<정말 그러네요... 사장님도 같이 드세요>
<사장님 사장님 하니까 꼭 거래처 손님 같습니다 후후>
<어머 그랬어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동갑이면 친군데 그냥 이름 부르죠 머... 지훈아 윤주야 이렇게 하하하>
<어머 호호호>
그녀는 입을 가리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중년의 여자는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한다
그동안 누구 엄마, 여보, 당신... 정작 본인의 이름은 결혼 후 몇 년 만에 사라지고 만다.
거짓말로 50만 원이라고 했지만 그는 절반으로 깎아놨다
아니, 처음부터 25만 원이면 고칠 수도 있었으리라
그가 점심을 먹자고 한다
내가 사고 싶었다
당연히 내가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50만 원을 25만 원에 해결해 주었으니....
<아이고 아닙니다...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제가 사드려야죠>
<이사장님은 아니죠... 후훗>
내가 산다는 말에 펄쩍 뛰며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사실 당신 때문은 아니죠... 당신 아내 때문이지
그의 차를 타고 몇백 미터 떨어진 곳의 고급 횟집으로 들어간다
2~3년 전에 친정식구들이 왔을 때 남편이 안내한 곳이었다
(나를 알아보려나?)
불륜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약간은 찜찜했지만 주인 여자는 반가운 손님 이상의 느낌은 없는듯했다
<굉장히 미인이세요... 전 깜짝 놀랐어요>
평소에 남편 친구나 회사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투다
스타일이 좋다는 평도, 나이보다 동안이라는 말도 자주 들어와 가끔은 나 자신 스스로 거울을 보며 웃기도 한다
<저는 올해 딱 40 됐어요... 아내는 한 살 어리고요>
40이라면 내가 이 남자보다 3살 많다
하지만 나이 많은 여자로 취급받기 싫었고 그가 불편해하는 게 싫어서 동갑이라고 했다
<동갑이면 친군데 그냥 이름 부르죠 머...지훈아 윤주아 이렇게 하하하>
●●●●●●●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어제 오후에도 조윤주 씨라고 물었고 지금도 윤주야라고 부른다
내 이름을 들어본 지 수십 년 된 듯 생소하기까지 했다
오래간만에 내 이름을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져 큰소리로 웃었다
오랜만에 활짝 웃게 해준 그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