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낯선 곳에서 동침 -하편
중얼거리듯이 힘없이 흘려내는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고 슬며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남자의 말이 나의 귀에는 묘한 의미가 담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가끔은 스스로 고독해지고 싶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를 의식하며 일어나는 감정의 질투일 수도 있다.
한동안 빗소리만이 들려오던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녀의 치맛자락이 하늘거렸다.
그녀는 마른 장작을 들고 와서 내 방 앞의 마당에 내려놓았다.
오늘도 그녀가 내 방에 군불을 지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쪽마루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문지에 불을 붙이더니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었다.
불씨가 당겨진 아궁이에서 연기가 잠시 흘러나오고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불길이 일어났다.
장작 불빛에 들어난 그녀의 얼굴은 여인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그대로 들어내 보이는 것 같다.
짙은 속눈썹 아래 까만 눈망울과 연분홍으로 변한 피부 빛깔,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공연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깊은 관심으로 변해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나서게 했다.
그녀의 큰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쪽마루에서 내려서서 슬며시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막상 그녀에 대한 관심으로 방을 나왔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바닷가라서 요새는 밤에 추워요.”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 한마디를 나누고 나와 그녀는 탁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타오르는 아궁이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불꽃이 일어나는 장작을 뒤적이는 그녀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물었다.
“주인 되시는 분은 뭐하시던 분인가요?”
“궁금하신가 봐요. 지금은 붓을 안 들지만 반시현이라는 꽤 이름 있는 화가였어요. 화가요. 병이 깊어서 요양할 겸 이곳을 사서 내려와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유명한 화가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고 존중심 때문에 하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싫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 하셨는데요?”
“.........?”
그 물음에 그녀가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장작불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가슴도 장작불처럼 타올랐다. 나 자신 스스로도 내 물음이 황당하다고 느껴 변명을 하였다.
“남편 되시는 분이 자신이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할 정도로 사랑이 깊은 것 같아서......”
“그 이가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그냥 편하게 애기하시더라고요.”
엉뚱한 질문에 대한 변명을 하려던 나는 더욱 무안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안쪽 마루로부터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느꼈다.
안방에서 슬그머니 나온 여인의 남편이 마루 끝에 걸터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표정으로 어둠 속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남편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이는 화가였고 전 모델이었어요. 홀어머니는 암투병중이었고 병원비를 마련하기위해 화가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했지요. 그때 저이를 만났어요.”
“........!?”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내는 의외의 말에 나는 놀랐다.
그녀와 그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으나 그들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다. 멀리서도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지만 남자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꼼짝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아궁이 속에 장작을 집어넣으며 여인네가 나를 곁눈질했다.
“그때 저이는 부인과 이혼한 후 혼자였고 이미 병이 깊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가 되겠다고 이혼한 아내가 수녀복 대신 저이 친구의 아내가 되기 위해 신부 드레스를 입었데요.”
“........!”
“저이 덕분에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수술까지 했으나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저이와 나는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어요.
나는 저이의 힘겹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등에 의지한 생명이고, 저이의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추락하고 말거에요,”
“그래서 남편께서는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고 했군요?”
문학적인 표현을 하는 그녀에게 적당한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말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 마루에 걸터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방안으로 들어갔는지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불빛에 비치는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기 말하시는 거죠? 그 말도 했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이의 희망 사항이에요.
아내를 안을 수없는 욕구 불만, 홀로 남을 아내에 대한 배려.........”
거기까지 말한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장작 불길에 그녀와 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남자로서 욕망을 상실한 육체적 갈등. 그런 것들 때문이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내가 한창 농익어가는 아내의 육체를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를 바라본 내 시선이 그녀의 눈길과 마주치자 장작불로 달구어진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그녀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들어난 그녀의 미소는 나를 유혹하는 아라비안의 무희 같았다.
장박불처럼 타오르는 감정은 내 혈관을 뜨겁게 달구어 요란한 고동 소리를 울리게 했다.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된 나는 더 이상 그녀 옆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슬그머니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 온 뒤에 내 가슴은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런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찻잔을 받쳐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앞섶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친 그녀를 본 내 가슴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본 그녀의 자태가 떠오른 까닭인지 방안으로 들어 온 그녀의 나긋한 몸의 윤곽이 원피스 위로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커피 한 잔 하세요.”
“.........!”
그녀는 눈가를 붉히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옆으로 다가와 앉는 그녀에게서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흘러 나왔다.
흐릿한 전구 불 밑에 들어난 그녀의 이마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마저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찻잔을 내려놓느라고 엎드린 그녀의 앞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민망스러움으로 시선을 외면하였다.
“잠자리에는 커피가 안 좋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이가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남편이 커피를 가져다주라고 했다는 그녀의 말은 변명일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로 했다.
내가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만큼 그녀도 나에 대한 관심이 있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배려를 갖고 있는 그녀의 남편 또한 은연중에 그러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생각을 하고보니 더욱 쑥스럽기만 하였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공연히 뜨거운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는 반복하였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그녀도 시선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느꼈다.
마주친 시선을 슬며시 피하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 쓸쓸하지 않으세요?”
“이젠 습관이 돼서요.”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자꾸만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망설였다.
그녀도 같은 느낌인지 찻잔만 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역시 남자보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용감하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혼자 생활에 익숙하신가 봐요?”
“그런 셈이죠.”
“저는 남편과의 여기 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익숙해졌으면서도 가끔은 적적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녀는 말없이 눈가에 자잘한 미소를 띠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껴안아 위로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도덕적 관념과 위로를 빙자한 욕구의 허상 속을 오가며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그녀가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녀가 휘청거렸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 않았다. 단지 반사적인 행동이지만,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옅은 화장품 냄새와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괜찮으세요?”
“네.”
그녀는 단지 딛고 일어난 발이 꼬였을 분이었다. 그녀는 홍조를 띠고 머뭇거리더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후회스러웠다. 좀 더 용기를 갖고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적어도 포옹 정도는 그녀가 거부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쪽마루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런데 멀어졌던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크게 들리며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그녀도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방문이 다시 열리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찻잔을 좀.......”
내 귀에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 것에 앞서서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문 안으로 끌어 들였다.
예기치 않았는지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끌려 들어왔다. 나는 가벼운 흥분에 젖어 말했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의 말은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심보다는 사랑을 베풀고 느낀다는 진심이었다.
쓸어 질 듯이 끌려오는 그녀의 작은 체구를 가슴속 가득히 포옹하였다.
그녀가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여기서 중단하면 자존심도 무너지고 치한으로 취급당해 난처해질 뿐이다.
더 이상의 주춤거림은 그녀와 나 사이에 벽을 쌓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포개고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가 주춤거리며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누구나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 스스로 용기를 불어 넣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녀는 더 이상은 거부의 몸짓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안긴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보드랍고 달콤한 입술을 탐닉했다.
수동적이던 그녀의 팔이 나의 목덜미에 감겼다. 점점 열기에 달아오르는 그녀의 입술을 헤집고 혀를 빨아 당겼다.
혀와 혀가 엉키고 그녀는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아들어 올렸다.
하복부가 잇닿아지고 그녀의 뜨거워지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원피스 자크를 끌어내렸다.
원피스 자락이 주르륵 발밑으로 떨어지고 그녀의 희고 고운 어깨와 가녀린 몸매가 들어났다.
서로의 혀가 엉키어지고 그녀를 끌어안은 내손은 그녀의 브래지어 호크를 풀어냈다.
그녀가 입술을 떼어내고 빤히 쳐다보았다. 브래지어마저 벗겨져 팬티차림의 그녀 모습은 무척 선정적인 자태였다.
“사랑하고 싶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넋두리처럼 흘리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돌아섰다. 그녀는 탁자위에 놓인 이부자리를 들어서 방바닥에 펴 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면서 전구의 스위치를 돌려 방을 밝히던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뽀얗게 들어나는 몸을 사린 그녀가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식 같은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껴안았다.
다시 그녀와 습한 입맞춤을 하고 혀와 혀가 엉키어 갈증을 풀어내듯이 서로의 타액을 들이마셨다.
풀 먹인 이부자리의 감촉이 그녀의 살갗에서 전달되어 오는 보드라움을 더욱 감미롭게 했다.
나의 손끝에서 나뭇잎 같은 팬티마저 벗겨진 그녀가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미 닫혀있던 문을 촉촉하게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발기된 남성을 그녀의 늪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그녀는 은어처럼 파닥거리며 매달렸다. 여인의 몸속에 숨겨져 있던 살갗들이 남성을 휘감아 왔다.
빠듯한 압박감을 느끼는 남성은 그녀의 보지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 들어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습기로 반짝거렸다.
뜨거운 불기둥이 여인의 늪 속을 파고들 때마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감탄의 신음을 삼키려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우람하게 발기된 남성이 보지 속으로 치밀어 들어가면 그녀도 따라서 허리를 들어 올렸다.
“아! 난 몰라.”
그녀와 나는 허울을 벗고 본능에 휘말린 암수에 불과했다.
이부자리에는 끈적끈적한 습기가 베어나고 방안에는 끊이지 않는 열기가 이어졌다.
나는 깊은 나락을 헤매고 있어 등을 껴안은 그녀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통증마저 극한 쾌감으로 느꼈다.
방문 밖에서는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살갗과 살갗이 잇닿은 곳에서 낙숫물처럼 습기가 배어 나온다.
폭풍처럼 몰아치며 보지 속을 치받을수록 그녀의 발가벗겨진 알몸은 능동적으로 흔들렸다.
잇닿은 살갗에 땀방울이 맺히고 갑자기 그녀가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트렸다.
“하 으~! 하 앙. 여보. 미, 미치겠어.”
“허 윽! 으, 은아 씨.........”
그녀의 몸속에 틀어박힌 남성이 샘물에 휘말리는 감각에 신경세포가 자지러지는 것 같았다.
상체를 들어 올린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습기에 젖은 눈망울로 올려다보았다. 황홀한 꿈속을 헤매는 여인의 눈빛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남성은 그녀의 늪 속을 여전히 헤집고 있었다. 오르가즘을 느낀 그녀는 더욱 장작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땀방울이 으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오르가즘의 엑스터시에 젖어 있는 그녀의 표정은 신비로웠다.
"아 흐......."
“허 억~!”
기어코 나는 그녀의 보지 속에 용암 같은 정액을 쏟아 넣었다.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껴안고 경직 되었다.
그녀와 나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시간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녀는 지구의 종말의 마지막 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고
나는 오랜 세월 만에 해후한 부부같이 그녀를 보듬어 안으며 아내에게 쏟았던 남자의 열정을 살려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녀와 나는 서로의 지친 몸을 껴안고 잠들었다.
언뜻 정신이 나서 선잠을 깨고 보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발가벗은 그녀는 작은 암사슴처럼 내 가슴에 파묻혀 잠들어 있었다. 문득 바스락 거리는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방문 틈으로 내다보는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웅크리고 있는 검은 물체였다.
그것은 안집 마루 끝에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을 죽이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의 이불 속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고른 숨소리로 쌔근거리면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다시 문틈으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밖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웅크리고 있던 그가 불쑥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쌀을 퍼 가지고 우물가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씻어내듯 쌀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무릎으로 기어서 이불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안았다.
잠 속에 빠진 그녀가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녀같이 어리광이 섞인 잠투정을 하였다.
“으응.........! 조금만.”
군불이 식어가는 방바닥이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남편대신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다시 달콤한 꿈속에 젖어 들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문에 환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옆에서 잠들었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수를 마칠 때까지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열고 밥상을 들고 들어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기가 서먹서먹하였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나와 하룻밤을 보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단지 그는 들고 있는 밥상이 무거워 보일만큼 힘들어 보였다.
안쓰러워 보이기에 얼른 밥상을 받아들었다.
“아내가 읍내에 나가서.......”
어눌한 미소를 지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밥상을 차려온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왜 아침 일찍 읍내에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물어 볼수도 없다.
다만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 네 고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가 차려준 식사는 돌을 씹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몇 수저를 뜨다말고 방문 앞에 밥상을 내 놓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그녀의 남편을 대하기도 어색하였다.
팔베게를 하고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국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결단을 하였다. 카메라와 배낭을 어께에 둘러메고 방을 나섰다.
마당 한 가운데서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가시려고요?”
“네. 잘 쉬었습니다.”
“아내가 읍내에 갔는데 좀 더 계시다가 보고 가시지?”
“아뇨. 가볼 때도 있고 해서. 나중에 들리겠습니다.”
쪽마루에 앉아서 신을 신고 일어서면서 명함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명함을 받아들고 내 이름을 암기라도 하듯이 되뇌었다.
"민태용 씨.......?”
“언제 서울 오시면 들리십쇼.”
나는 마치 취조라도 받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그를 뒤로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니 자꾸 뒤 꼭지가 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미련이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뒤를 돌아 본 나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돌담 곁으로 보이는 문 사이에 여인의 머리를 묶은 리본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대문 틈으로 내다보고 있는 눈동자. 읍내에 갔다고 하는 그녀가 틀림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용기가 없어 바닷가 소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녀에 대한 잔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나치고 말아야 할 인연이건만 이별한 아내에게 향한 마음보다도 더한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쳤다.
나는 밤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결국은 그녀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바닷가의 그곳을 찾아간 나는 실의에 빠졌다.
그곳에는 더욱 녹슨 여인숙 간판만이 서 있을 뿐, 그녀도 그녀의 남편 보습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집안을 돌아보며 좌절감에 빠졌다.
못내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웃의 지붕이 나지막한 집의 문을 두들겼다. 집안에서 머리가 백발인 노인네가 나왔다.
“혹시 저 옆집에 사시던 분들 어디 가셨는지 아시나요?”
“모르지요. 남정네가 죽고 여편네는 어디론가 떠났으니까.......”
그 노인의 말은 나의 간절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걱정했듯이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로움으로 헤맬 것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쓸쓸함에 젖어 발걸음을 돌리면서 한 가닥의 희망만은 놓치지 않았다.
분명하게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남편의 유물들을 정리하다가 내 명함을 발견하고 연락을 해 올 것 같았다.
아니 연락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