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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짐승 계약 #21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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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태진이 지윤을 힐긋 내려다봤다.



“이미 있지 않나?”


“!”



느긋한 목소리에 지윤의 눈이 커졌다. 그 얼굴을 보며 태진이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



“네 소문은 나한테 안 들어올 거라 생각해? 피차 더러운데 한쪽만 깨끗한 척하진 말자. 기분 더러워지니까.”


“…….”



태진이 그대로 방을 나가 버리자 지윤은 그 자리에 선 채 이를 악물었다.



***



“허억, 헉.”



침대에서 석호 위에 올라탄 지윤이 헐떡이는 그를 내려다보며 난잡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젖은 살이 둔탁하게 석호의 몸을 쳐 댈수록 그의 신음이 커졌다.



“아……. 지윤아…….”



쾌감에 젖어 신음을 흘리는 석호와 달리 지윤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입술을 짓이기듯 깨문 그녀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나 어제 문태진이랑 잤어.’


‘너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문태진의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자 몸 안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이럴 때마다 표정 관리하기 힘들었다.



‘꽤 잘하던데? 지윤이 너도 해 봤지?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각별하다며.’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에 태연을 가장했다.



‘잘하긴 하는데 그냥 그랬어.’


‘난 괜찮던데. 문태진이 하자고 하면 또 하려고.’


‘나도.’


‘너네 남자 있잖아.’



친구들의 발언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한마디 하자 피식거리는 조소가 날아들었다.



‘얘 봐. 맨날 밥만 먹고 사니?’


‘그러게. 최지윤 너 왜 갑자기 순진한 척이야? 웃긴다.’


‘…….’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잘근거렸다.



“아아…… 지윤아, 좋아……. 너무 좋아…….”



으득.



석호의 몸 위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지윤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분노로 일그러져 갔다.



‘왜 너랑 안 자냐고?’



태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니 더 기가 찼다. 온갖 여자들과 다 자고 다니면서.



‘다들 너랑 자 봤다길래. 우리 약혼한 지도 좀 됐잖아.’


‘너 설마 나랑 자고 싶은 건 아니지?’



그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찌푸리자 눈을 부릅떴다.



‘미쳤어? 그냥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거잖아.’


‘야, 자자는 줄 알고 놀랐잖아.’



안도한 얼굴을 보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걸 꾹 눌러 참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유가 뭔데?’



태진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날 쳐다봤다.



‘넌 가족이랑 섹스하냐? 넌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가족 같아. 그래서 안 꼴려.’




하, 나만 안 꼴린다고?



“개새끼가……!”



지윤이 욕설을 내뱉자 그녀의 밑에 깔린 석호가 쾌감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아, 조, 좋아! 지윤아. 더 욕해 줘.”


“미친 새끼, 개자식! 더러운 새끼!”


“아, 아아……!”



석호가 쾌락에 겨워하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지윤은 이를 악물고 거칠게 움직였다. 

문태진에 대한 스트레스를 저에게 푸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남자의 얼굴이 역겨울수록 더 격하게 움직였고 그럴수록 석호는 자지러지며 좋아했다.



“으윽, 지윤…… 지윤아!”



헐떡이며 절정에 다다른 석호가 콘돔 안에서 사정했다.



‘한심한 새끼, 벌써 가?’



사정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석호를 지윤이 정 떨어진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끈적거리는 축축한 몸을 빼내자 힘 빠진 남자의 물건이 볼품없이 늘어졌다.



‘지금 몇 시지? 준호에게 연락해 봐야 하나?’



지윤은 전혀 만족되지 않은 섹스에 곧장 다른 남자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잠자리 상대는 많았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황석호는 처음부터 한희민을 무너트리기 위해 이용했을 뿐이고 어차피 이제는 그 용도를 다했다. 곧 폐기 절차를 밟게 될 거였다.



지윤이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테이블 위에 올려 뒀던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낸 지윤이 발신인을 확인하고 눈을 빛냈다.



‘드디어 걸렸나?’



기대에 찬 얼굴로 지윤이 전화를 받았다.



***



희민은 정성껏 만든 크리스마스 가랜드를 담은 쇼핑백을 조수석에 실었다. 

차를 출발시키며 시간을 확인하니 정혁과의 약속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빨리 들렀다가 출발하면 되겠지.’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정혁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특별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준비 시간을 오래 갖고 싶었지만 희민은 시간을 쪼개 급히 서희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내일 서희에게 들를 예정이었지만 막상 오늘 수업 시간에 예쁜 가랜드를 만들고 보니 당장 전해 주고 싶었다.

가랜드를 본 서희가 크리스마스를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잠깐 시간을 낸 거였다.



병원에 도착한 희민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VIP 병실이 있는 층에서 내리자 서희의 병실에서 막 간호사가 나오고 있었다.



‘정혁 씨?’



열린 문틈으로 정혁이 보이자 희민이 멈칫거렸다.



‘정혁 씨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정혁과 서희가 방 안에 있었고 두 사람을 위해 간호사가 급히 자리를 피해 주는 중인 걸로 보였다. 

희민을 본 간호사가 인사하려는 순간 그녀가 얼른 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해 달라는 뜻을 알아들은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희민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열린 문틈 앞에 섰다.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난 맨날 병원에만 있는데 자꾸 이런 거 받으니까 미안하기만 해요. 희민이에게만 잘해 주면 되는데 왜 나한테까지…….”


“어서 퇴원하셔서 희민이와 함께 외출하실 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매번 받기만 해서 미안하네요.”



정혁이 선물한 걸로 보이는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는 서희의 모습이 보이자 희민은 심장이 쿵쿵 울렸다.



“아직 멀었습니다. 제대로 받으시려면 퇴원하셔야 합니다. 그땐 정말 지겨울 정도로 해 드릴 겁니다.”



서희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희민이와 양쪽에서 다른 방식으로 설득하네. 희민이는 눈치 좀 챘어요?”


“아직 모릅니다.”


“이제 말해 주지 그래요. 좋아할 텐데.”


“곧 그럴 생각입니다.”



옆모습뿐이긴 하지만 정혁의 미소 짓는 얼굴이 보였다. 그

가 자신 외에 저런 미소를 지으면서 대화하는 사람은 처음 봤기에 희민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래서였구나.’



그동안 서희가 왜 정혁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는지 희민은 이제야 깨달았다. 

이미 그를 알고 있어서 묻지 않았던 거였다. 

언제부터 정혁이 병실에 찾아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생각보다 오래됐음을 지금 그들의 대화로 알 수 있었다.



“…….”



문 사이로 잔잔한 미소가 어린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던 희민이 조용히 물러섰다. 

소리 나지 않게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병원 주차장으로 내려온 정혁은 자신의 차 앞에 서 있는 희민을 보고 걸음이 느려졌다. 

곧 수려한 얼굴에 근사한 미소가 어리고 긴 다리로 성큼 걸어왔다.

거리가 좁혀 들자 희민이 입술 끝을 말아 올리고 말했다.



“언젠가 봤던 장면 생각나지 않아요?”


“……그렇군.”



그대로 한 발 더 다가선 정혁이 희민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들인 뒤 놔 주자 두 사람의 눈동자가 가까이에서 부딪쳤다.



“난 그때 키스해 주지 않았는데.”



희민이 속삭이듯 말하자 그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이 짙어졌다.



“해 주지 그랬어.”


“정말…… 그럴 걸 그랬어요.”



정혁의 목에 팔을 감은 그녀가 시선을 맞추고 입술을 어여쁘게 끌어 올렸다.



“지금 해 줄게요.”



희민이 까치발을 하고 그에게 키스했다. 

입술을 열어 촉촉한 혀를 얽는 순간 그에게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그녀의 허리를 제 쪽으로 바짝 당긴 정혁이 희민의 입술을 벌리며 더 진하게 혀를 빨았다. 

키스가 짙어질수록 그녀의 팔이 그의 목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



크리스마스 한정 디너 코스가 있는 레스토랑은 한강과 서울 야경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해 있었다. 

희민은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봤다.



“멋진 곳이네요. 이런 날 예약하기 힘들었을 텐데…….”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음식도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묻던 희민이 아, 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정혁은 레스토랑 예약과 상관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순간 잊고 있었다. 

조금 민망한 듯 웃음을 흘린 희민이 와인 잔을 매만졌다.



“요즘 우리 데이트가 평범해서 그런지 당신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잊어도 돼.”



정혁이 짙은 미소를 지으며 희민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잠시 보고 있던 희민이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자 결 좋은 머리칼이 어깨 아래로 찰랑거렸다.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맞춰 주는 거죠? 요즘 가는 데마다 내가 다 좋아하는 곳이잖아요. 처음 간 곳도 내가 맘에 들어 하면 거길 자주 가고…….”



시선을 내려뜨렸던 희민이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우아하게 들어 올렸다. 또렷한 눈매와 시선이 마주치자 정혁의 눈동자가 진하게 물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내 취향을 잘 알아요?”


“오래 봐 왔으니까. 말했잖아.”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며 와인 잔을 내려놓은 정혁이 옆에 두었던 브리프케이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여기서 막히더군.”



그가 그 안에서 선물 포장이 된 케이스를 꺼냈다. 

그런데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케이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주르륵 늘어놓자 희민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게 뭐예요?”


“우선 열어 봐.”



희민은 살짝 주저하며 하나씩 포장을 뜯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목걸이가 각각의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백화점 명품 쥬얼리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고가에 속한다는 곳의 목걸이였다.

하나만도 수천만 원에서 억대는 가볍게 상회한다는 브랜드의 목걸이를 여러 개 꺼내 놓은 정혁은 심각한 얼굴로 그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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