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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당가풍운 -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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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은 꿈을 꾸었다. 그곳에는 아버지 당화가 둘째 숙부인 당영과 같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손을 흔들며 당정을 불렀다. 당정이 다가가 그들 옆에 앉았고 그들의 앞에는 어느새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영은 아버지 당화와 함께 독진 안에 들어가 실종된 숙부였다.

당정은 너무나 반가워서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님, 숙부님 어찌 그동안 연락도 없이 계셨습니까? 어머님이 너무 힘들어하십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도..."


당정이 원망하듯 말하자 부친 당화는 안쓰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래, 아들아 이 아비가 모든 일은 다 알고 있다. 네 어머니를 돌볼 사람은 너밖에 없는 듯하구나.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당정은 부친의 무릎을 잡고 애원했다.


"아버님, 저도 여기 오고 싶사옵니다. 소자는 지금 너무 힘이 듭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아버님 곁에 있고 싶사옵니다."


하지만 당화는 고개를 저었다.


"너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있구나. 너는 나의 분신이야. 우리 나중에 웃으며 볼 날이 있을 것이야."


아침, 당정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아침이라 창문 틈으로 햇살이 들어와 그의 얼굴을 간질이고 있었다. 당정은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인이 된 후에 한시도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없는 당정이었다. 꿈속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슬픈 꿈이라도 꾼 게로구나."


눈을 뜨자 들어오는 햇살 사이에 한 여인이 앉아 자기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햇살 때문에 형체만이 보였다.


어머니의 손길은 너무나 자상하고 따뜻해서 당정은 다시 눈을 감았다.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몸도 아프지 않았다. 밤새 그토록 괴롭고 힘들었던 모친의 불행도 잊혔다.

당정은 주인에게 사랑받는 고양이처럼 볼을 모친의 손에 비볐다. 꺼칠한 턱수염에 와 닿는 모친의 손길.

그런 아들의 얼굴을 두응향은 마냥 쓰다듬고 있었다. 입술에는 절로 포근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오늘은 잠을 잔 게로구나. 그렇지? 정아?"


당정은 그동안 밤만 되면은 잠을 자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주화입마 후에 떨어져 기거하던 아들을 시비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보살펴 주려던 배려였다.

하지만 두응향은 벌써 당정이 몇 달 전에 혼수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자신이 밤마다 숙부에게 겁탈당하며 열락(悅樂)에 몸부림치는 것을 알고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아야, 네 상태가 점차로 호전되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구나, 이 어미가 이제 몇 가지 약재만 구하면은 네가 걸린 독도 제거할 수 있을 거야."


두응향은 오랜만에 편안해 보이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렇게 영준했던 네가 이렇게 변하다니."


두응향은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아 고개를 쳐들고 숨을 깊게 들이켜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한가로운 오전에 두 모자는 그렇게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있었다.



*     *     *


강인한 인상의 중년인이 붓을 든 채 무언가를 책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절곡에서 실종된 열성신군 당화의 뒤를 이어 당가의 가주로 취임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탈혼신군 당패였다.

그때 당패가 앉아있던 방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들어섰다.


사십 대 중반의 아름다운 중년 미부였다.

푸른 궁장 차림의 그녀는 실로 천하절색의 용모와 터질 듯 무르익은 뇌쇄적인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날카로운 눈매와 범접할 수 없는 듯한 고고한 자태는 그녀를 보는 사내에게 어떻게든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감히 그녀에게 그럴 정신 나간 작자는 없었다.

미부인의 정체는 바로 당패의 정실부인이며 당가의 가모인 구숙정이었다.

당패는 살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이런. 당신이 먼저 이곳에 올 줄은 몰랐군."


"닥쳐요!"


구숙정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얼굴로 자기 남편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실로 냉랭하기 그지없었고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는 위로 표독스럽게 치켜 올라가 있었다.


"상공이 새로이 가주로 취임하고 벌써 이년!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전대 가모와 그 아들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죠? 하루빨리 두응향과 당정을 처리해야만 해요!"


구숙정은 두응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분이 치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다시 싸늘한 어조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특히나 그 여자! 당종은 폐인이 됐다고 하지만 두응향은 여전히 전대 가주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두응향이 전대 가주의 지지 세력을 내부에서 결집하거나 아니면 외부에서 끌어들일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녀는 당가 내에 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존재에요! 상공,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 것이죠? 당신도 강호 무림이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함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면. 후후, 당신. 내가 정말로 당신과 그녀의 비밀에 대해 모를 거로 생각하나요?"


구숙정이 냉소와 함께 비꼬며 말하자 당패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지금 그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요? 그녀는 나의 형수요! 나를 추잡한 색마로 보는 것이오?"


그 말에 구숙정은 코웃음을 치더니 앙칼지게 소리쳤다.


"흥! 웃기지 말아요! 나도 눈과 귀가 있고 엄연히 당가의 안주인이에요. 후후, 좋아요. 지금 당장 여기서 두응향 그년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고 처리할 것을 결정하면 저도 지금까지의 일을 잊겠어요!"


당패는 괴로운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려. 그리고 전에도 말했다시피 두응향은 전대가주의 가모이자 실종된 형님의 형수로 마땅히 내 책임하에..."


당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찰싹 소리가 들리며 당패의 왼쪽 뺨이 즉시 벌겋게 부어올랐다.

구숙정은 당패의 뺨을 힘껏 갈기고도 여전히 분이 가시지 않은 듯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버님! 어머님! 무슨 일입니까?"


준수한 얼굴의 청년이 문을 세차게 열며 나타났다. 당패와 구숙정의 아들이며 당가의 소가주인 당종이었다.

문밖에서 어머님을 기다리던 당종은 방안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따귀를 때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재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다.

당종은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부친과 분노로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는 모친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당종은 방안의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하고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며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 두응향을 내버려 두면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후환을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제발 어머님의 말씀을 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당패는 아들의 간청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자 당종은 한층 언성을 높이며 재차 말했다.


"어머님은 단지 아버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제가 어머님을 사랑하듯이 아버님 또한 어머님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제발 어머님과 소자의 말처럼 두응향과 당정을 이 당가에서 치워버려야 합니다!"


"종아야..."


당당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아들을 바라보는 구숙정의 얼굴은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넘치고 있었다.


"에미의 편을 들어주어 고맙구나."


구숙정은 아들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칭찬해주었고 항시 엄하고 얼음처럼 차갑던 모친으로부터 칭찬받은 당종은 감격한 모습이 역력했다.

당패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서탁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쥐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럴 수는 없다! 대대로 우리 당가는 혈연으로 뭉쳐오며 세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어찌 한 핏줄을 제거하란 말이냐? 또 형수와 조카를 제거한다면 다른 정파 세력에서 우리 당가를 어떻게 보겠느냐? 당신도 잘 들으시오! 형님의 식솔들은 내 보호 아래 있을 것이오!"


당종이 즉시 반론을 제기하려 했다.


"아버님! 하지만."


"이제 그만!"


당패는 포효하며 아들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서탁을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두께와 재질을 가진 서탁이 당패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단숨에 박살이 났다.


구숙정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잠시 당패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흥! 종아야, 아무래도 네 아비가 두응향 그년에게 단단히 홀린 모양이구나!"


구숙정이 그렇게 비아냥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당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종은 당혹해하면서 당패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린 후 얼른 모친의 뒤를 따랐다.

구숙정과 당종이 사라지고 당패는 홀로 남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슴에 품은 당패는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은 고통과 함께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그 웃음소리마저 사라지고 오직 적막만이 서재를 채울 때 어디선가 한 줄기 미풍(微風)이 불어왔다.


* * *


두응향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두응향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밤의 냉기는 믿기지 않게 사라지고 없었고 공기는 서늘하니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두응향은 후원에 난 작은 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중간에 순찰을 하는 인원을 마주쳤으나 그들은 잠깐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는 지나쳐 왔다.

비록 지금은 뒤로 물러나 있지만 한때는 자신의 가모였던 두응향에 대한 예의였다.


후원 문에는 두 명의 인원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당씨촌을 이루고 있는 당가들은 대단히 많은 인원이 있었다. 그 당씨들이 지금 당씨 세가를 이루고 있다.

가법에 따라 출가할 딸에게는 무공 전수를 하지 않고 아들에게만 절기를 전수해 준다.

오히려 딸에게는 가르치지 않는 무공을 며느리에게는 전수해 주고 사안에 따라 세가의 회의에도 참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두응향이 이르자 보초를 서던 한 명이 물었다.


"마님, 어디로 행차하시는지요."


"음, 수고가 많구먼. 내 오늘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서 왔다네. 그리 알게나."


두응향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자 초병은 약간 주저하며 마님을 쳐다보았다.


"마님, 저희로서는 먼저 보고하고 나서 통과를."


초병이 말을 흐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어 왔다.


"됐어. 마님이 산책하신다는데 보고까지 할 필요가 무엇 있나? 자, 마님 날씨도 찬데 조심하십시오."


뒤에서 초병의 말을 끊고 나선 사람은 이제 20대 초반으로 얼굴이 화사한 청년이었다.

회선수(回線手) 당잔으로 젊은 나이에 절기를 연마한 후기 기수로 당잔은 두응향의 넷째 시숙 당력의 아들이었다.


전대 가주이며 첫째인 남편 당화, 둘째인 당영은 같이 절곡으로 간 이후 행방이 묘연했고, 셋째이며 현 가주인 당패, 넷째인 당력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기가 있었으나 눈꼬리가 위로 쳐 올라가 있어 인상이 차가워 보이고 성격이 다소 음침한 것이 흠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장부에 적을 필요도 없을 거야. 자, 그럼 마님 다녀오십시오."


뜻밖에 당잔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자, 두응향은 기꺼운 마음으로 후문을 나서 높은 담김을 따라 걸어갔다.

당잔은 막 멀어지는 백모의 등을 주시하다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며 초병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자, 모두 수고하고. 나는 이제 내 볼일을 보러 가야 하겠구먼."


당잔은 휘적휘적 걸으며 안으로 사라졌다.


두응향은 관도를 따라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외진 곳답게 관도는 인적이 없이 좌·우측으로 누런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생각에 잠겨있으면서도 바쁘게 걷던 두응향의 발걸음이 점차로 느려졌다.

잠시 멈추어 서서 천공을 바라보던 두응향은 발걸음을 돌려 갈대밭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람이 살짝 불자 너른 갈대밭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물결쳤다.

한참을 걷던 두응향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허공에 대고 말을 했다.


"자, 내 뒤를 따라오는 이유를 말해볼까?"


두응향이 허공에 대고 말을 하였으나 사방은 조용하니 인적이 없었다.


"무엇이 겁이 나서 나오지 못하나, 당잔 어서 나오게나."


두응향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옆쪽에서 갈대가 길게 갈라지며, 장원 쪽으로 사라졌던 당잔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하. 마님의 무공으로 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셨을 테고. 마님의 그 총명함에 경의를 보냅니다. 백모님."


당잔은 별 공경스러운 태도도 보이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한다.


"그럼 내 뒤를 따라오는 이유는 뭐지?"


"하하. 마님은 우리세가의 중요 인물이니 당연히 신변 보호차 제가 나서게 된 이유지요."


두응향은 여유로운 얼굴의 당잔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자네의 그 호의에 그저 감복할 나름이군."


두응향의 비꼬는 듯한 말에도 당잔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 마님. 그것은 그렇고, 산책하신다더니 웬일로 이리 멀리까지 행차하셨는지, 이 조카는 그저 궁금할 나름입니다."


당잔의 말에 두응향의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내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가볼 데가 있다네. 이번 자네가 내게 호의를 베풀어 준다면은 나도 자네에게 서운하지 않게 대해주겠네."


두응향이 조바심을 낼수록 당잔은 오히려 더욱 여유가 생겼다.


"그 말은 제가 마님을 도와주면 마님도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두응향은 안타깝고 답답한 표정이 되어 당잔에게 말했다.


"그, 그건. 내 자네가 섭섭하지 않도록 하겠네."


당잔의 깊게 가라앉은 눈이 더욱 침침해졌다.


"마님, 저는 항시 마님을 흠모하고 있었습죠. 전 마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내심이 크지 않아서 흐흐흐. 마님이 지금 조금만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준다면."


두응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두말하지 않아도 당잔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당잔이 음탕한 눈빛으로 자기 몸을 위아래로 흩어 보고 있는 모습은 마치 발정 난 수캐를 연상케 했다.


두응향은 새삼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몰락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패륜이 벌어지고 있다.


두응향은 애가 타서 몸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바깥 외출이 쉽지 않은 두응향이었다.

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주어질지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였다. 두응향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이미 정조를 잃은 년이 더 이상 지켜야 할 것이 무엇 있겠는가?)


두응향이 내심 고심에 빠져있자 당잔은 그런 두응향을 재촉했다.


"흐흐. 마님, 저는 이번 일이 아니라도 마님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당잔은 내심 애가 탔다. 조금만 더 재촉하면 꿈에 그리던 소원을 성취할 기회가 온 것이다. 평소 순찰을 하지 않던 그가 오는 우연히 마주친 이 기회가 그는 하늘에 감사하고픈 심정이었다.


"좋아. 내게도 대신 조건이 있네. 들어줄 수 있는가?"


두응향의 말에 당잔은 내심 한숨이 길게 내쉬었다. 두응향이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순순히 장원으로 돌아갈까 봐 조바심을 쳤다. 하지만 당잔은 여유 있게 말을 했다.


"흐흐. 무엇이든 말씀해보시지요."


두응향은 당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자네의 원을 들어주면 곧바로 장원으로 돌아가서 내가 미시까지 돌아갈 테니 그동안 이상 없이 일을 처리해주고, 자네와 나와의 일은 이 장소를 벗어나면 비밀로 하고, 추후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네."


당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했다.


"제가 약속을 어기면 어쩌시겠습니까?"


두응향은 당잔의 눈을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말을 했다.


"나는 죽음으로 진실을 밝히고, 자네는 현 가주의 분노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두응향의 말에 당잔은 내심 계산했다. 현재 가주의 측근들은 전 가주의 식솔인 두응향과 당정에 대해 처리할 것을 벌써 여러 번 건의하는데도 가주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 거절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일 때문에 현재의 가모(家母)와도 사이가 소원해지고 있다는 설이 나오고 있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금은 이것으로 만족해야겠군. 나중에 또다시 기회가 있겠지.)


당잔은 두응향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마님의 말씀에 응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라도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달려가겠으니 많이 이용해주시죠. 하하."


당잔이 응하자 두응향은 바쁜 마음에 말을 했다.


"자, 그렇게 이 몸뚱어리가 필요하다면 자네 좋도록 하게."


체념하고 눈을 감은 두응향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두응향의 모습에 당잔은 감격해서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며 다가갔다.


"그, 그럼... 흐으."


당잔은 두응향에게 다가가 그녀의 둔부에 손을 댔다.


"으으..."


두응향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쓰다듬던 당잔이 오히려 신음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다가, 두응향의 풍만한 하체를 더듬던 손으로 그녀의 치마를 움켜쥐었다.

두응향의 전신은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경련했다.


당잔은 음침하게 웃으며 두응향의 치마를 벗기고 그 속에 속곳 바지를 벗겨내자 붉은색 고의가 드러났다.

기름지고 매끈한 아랫배의 평원이 뽀얀 우윳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고의에 가려진 두응향의 비처가 숨어있었다.


당잔의 눈이 한순간 그녀의 사타구니를 응시하였다. 이어 그는 거침없이 속곳을 움켜쥐더니 단번에 벗겨내었다.

여체의 은밀한 비역, 속곳 속에는 여인의 깊은 골짜기가 숨이 막힐 듯한 유혹을 발산하고 있었다.


여인의 계곡은 검은색의 윤기가 흐르는 체모로 덮여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체모가 그녀의 살짝 부풀어 오른 둔덕을 덮고 있는데 그녀의 새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너무나 탐스러워 보였다.

그 체모 사이로 언뜻 깊은 균열이 숨어있는 것이 보였다.


당잔의 눈은 욕정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당잔은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려 그녀의 상의를 단숨에 벗겨내자 드디어 두응향의 적나라한 나체가 드러났다.


두응향이 숨을 쉴 때마다 물결치듯 일렁이는 젖무덤, 기름진 하복부, 한 줌밖에 안될 듯 잘록한 허리. 그 아래 드넓고 풍만하게 벌어진 둔부, 여인의 백옥 같은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체모.


당잔의 시선은 다시 그녀의 늘씬한 허벅지를 주시하다가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계곡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으음..."


당잔의 손이 자기 허벅지를 벌리고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나직이 신음을 흘리었다. 이윽고 당잔은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세웠다.

두응향은 사내의 시선이 거기를 주시함을 느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 마님. 이렇게. 이렇게 아름답다니."


당잔은 감격에 겨워 말을 더듬을 정도로 흥분해서는 서둘러 자기 옷을 벗고 갈댓잎 위에 깔고는 두응향의 알몸을 안아 바닥에 눕히었다.

당잔의 드러난 성기는 극도로 흥분해서 첨단에서는 맑은 겉물이 벌써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당잔은 그녀의 위에 올라가서 그녀의 탐스러운 젖을 핥으며 희롱하다가 이윽고 그녀의 젖꼭지를 입에 넣고 힘껏 빨아대기 시작했다.

두응향의 젖꼭지가 길게 늘어나며 마치 지금이라도 수유가 될 것만 같았다.


두응향은 당잔이 자신의 양쪽 젖을 쥐고 젖꼭지를 빨아대자 서서히 느껴지는 연락을 느끼고는 입술을 내리눌러 물었다. 이미 사내에 길든 몸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참을 설백의 젖에 침을 묻혀가며 빨아대던 당잔은 서서히 밑으로 옮기어갔다. 아기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복부는 팽팽하기 그지없었고 배꼽은 오목하게 들어가 앙증맞아 보였다. 잘록한 허리를 거쳐 밀지 위에 위치해서 당잔은 두응향의 가랑이를 벌리어갔다.


"으으음...."


두응향의 달콤한 신음소리를 들으며 당잔은 그녀의 두 다리를 개방하고 그녀의 음부를 보았다. 이미 수없이 사내를 받아들이고도 그녀의 음부는 깨끗하고 색깔도 빨간 것이 마치 소녀의 음부 같기만 했다.


그는 여체의 오묘함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와 함께 그는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코를 찌르는 여체의 살 내음, 그의 눈앞 한자도 안 되는 곳에 신비스러운 여체의 옹달샘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 사이로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순간 당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와락 여인의 하체를 끌어안았다. 이어 그는 미친 듯 여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샘물을 빨아 마셨다.

삽시에 여인의 그곳의 방초와 동굴 입구는 당잔의 타액으로 흠씬 젖어 들었다.


"흐흐윽!"


여인은 환희의 신음성을 내뱉으며 자기 하체를 탐닉하는 당잔의 머리를 자신도 모르게 부둥켜안았다. 사내의 혀가 깊은 옹달샘을 파고들어 휘저을 때마다 여체는 마치 작살을 맞은 듯이 푸들푸들 경련이 스쳤다.

물기 머금은 야릇한 비음. 당정의 거친 헐떡임으로 갈대밭은 삽시에 음란한 염기에 휩싸였다.


"........"


실컷 목을 축인 당잔이 고개를 일으켰으나 여체는 사지를 개방한 채 늘어져 있었다. 벌써 한차례의 절정을 맛보았다.


"흐흐. 마님, 옥수가 정말로 감칠맛이 나는군요."


당정은 음탕스럽게 웃으며 입가에 묻은 음액을 혀로 핥으며 조금 전까지 자신이 실컷 탐미한 곳을 내려다보았다.


활짝 벌려 세워진 허벅지 사이의 방초수림은 당잔의 타액에 젖어 좌우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 덕분에 깊숙이 갈라진 질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물기를 머금은 여인의 옹달샘은 살짝 입을 벌린 채 사내를 유혹하고 있었다.


당잔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기 성기를 잡고는 상체를 두응향에게 싣고는 질구에 갖다 댔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완된 여체의 몸속으로 자연스럽게 삽입이 된 것이었다.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촉촉하게 옥죄어드는 질벽의 감촉은 당잔이 생전 처음 맛보는 지극한 황홀경이었다.

그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는 황망히 자기 성기를 뿌리까지 깊숙이 여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흐으윽…. 아아.!"


여인은 사내의 성기를 뿌리까지 받아들인 채 가쁘게 숨을 할딱였다. 여인의 그 감미로운 찬사에 당잔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헉헉! 보궁(寶宮)이야 보궁."


그는 욕정으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맹렬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염원을 일시에 해소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거의 필사적인 것에 가까웠다.


"아윽! 흐윽.... 아아....!"


두응향은 자지러졌다. 사지를 이용해서 당잔의 몸을 뱀처럼 옭아매었다. 그와 동시에 당잔과 두응향은 격렬하게 몸을 일렁이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


두응향의 높은 옥음이 길게 길게 울려 퍼졌다.


당잔은 흡사 포식해서 행복한 고양이처럼 만족한 표정으로 갈대밭을 헤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경공을 발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른한 만족감을 느끼는 당잔이었다.


"어...?"


무심코 고개를 들어 앞을 보던 당잔은 전면을 응시했다.


당정.


당정이 서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서 있는 것도 힘이 드는 듯, 앞뒤로 건들건들하면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당정 아우가, 세가에만 있던 아우가 여기는 웬일인가?"


당잔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당정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는 백모가 되고 앞에 서 있는 당정의 생모와 알몸으로 뒤엉켜 연락의 순간을 보내었으니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컹할 정도로 놀라고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당정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인식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당정에게 말을 했다.


"여기에 왠일인가?"


당정이 약간 숙인 고개를 들어 당잔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말을 했다.


"형님은 여기까지 웬 행차를 하셨는지요?"


건들거리는 당정을 보며 당잔은 두 손을 과장되게 흔들어대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당잔은 당정의 눈이 냉정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선입관이 무서운 것은 주화입마 당하여 폐인이 된 당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연히 경계심은 사라지고.


"하하. 실은 내 은밀히 만나는 처자가 한 명이 있는데 내 그 처자와 잠시 사랑을 나누고 오는 길이라네. 자네도 남자니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하하하."


"그야 형님은 전부터 여인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니까 그런데."


당정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자 자꾸만 작아지는 당정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당잔은 절로 당정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다 "그런데"라고 말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던 당잔의 앞으로 당정의 손이 쳐들리며 검은빛이 일직선으로 당잔에게 뻗었다.


"으헉..."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잔은 몸을 비틀며 상체를 뒤로 급격하게 젖히었다.


쉐에엑--


찢어지는 파공성은 한참이나 뒤에 들리는 것 같았다.


퍽-


"흡!"


검은빛이 당잔의 어깨를 꿰뚫었다.


"천려질, 천려질이로구나...."


당잔의 눈에 두려운 기색이 떠올랐다. 왼쪽 어깨 근맥이 끊기었다. 이후에도 불구를 면치 못 하리라.


탁탁탁-


당잔의 눈에 가공할 속도로 달려드는 당정의 몸이 보였다. 당잔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려 쳐오는 수영을 막아내었다.


딱딱딱-


손과 손이 마주치는데 마치 나무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었다.

당정이 잠시 뒤집기 질을 하더니 상체를 뒤로 젖히더니 옆구리 부근에서 검은빛이 뻗어 나와 당잔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크흑..."


이미 당잔의 상체는 선혈로 뒤범벅이 되었다. 당잔은 당정과 부딪치며 그새 퉁퉁 부어오른 두 팔을 허우적대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 다리를 꿰뚫린 그의 몸은 중심을 잃고 휘청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다시 득달같이 달려드는 당정이 보였다. 그의 두 눈이 공포와 절망으로 질려있었다.


"아아아...."


당정의 손에서 무언가 번뜩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이마가 화끈하며 해를 품었다고 생각했다.


"헉헉...."


당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잔의 앞이마에 박힌 천려질을 더욱 밀어 넣었다.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천려질이 두개골 안으로 파고들었다.

당잔의 눈에서 이미 생기가 떠나고 있었다. 당정이 붙잡은 당잔의 몸을 놓자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이마에 섬뜩하게 빛나는 천려질을 박고 넘어지는 당잔을 보며 당정을 냉소했다.


"너의 죄는. 죄는. 아버님이 구천에 계신다면 다시 죄를 물을 거야. 우우 욱."


갑자기 당정은 허리를 굽히고 검은 피를 꾸역꾸역 쏟아내며 쓰러졌다.


"우우 욱. 우우 욱."


덩어리 피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걸렸던 당정은 3년이 지난 지금, 조금씩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꼬였던 경맥을 비록 더디지마는 풀어나가고 있었다.


당정은 우연히 후문에서 모친과 당잔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당잔이 안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 모친의 뒤를 몰래 밟는 것을 목격하고는 당잔의 뒤를 따라왔다. 거기에서 당정은 다시 한번 이성을 잃을 뻔했다. 모친과 당잔이 알몸으로 뒹구는 것을 다시 목격했다.

거기다 들리는 모친의 신음소리는 왜 이리 달콤하고 달착지근하던지.


심장을 갉아 먹을 것 같던 질투와 질시에 몸을 떨던 당정은 원정(原情)을 끌어올려 아주 짧은 시간 무공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전에 비교하면 2할 정도의 위력만이 발휘할 수 있어 당잔에게 기습을 가한 것이었다.

이번에 원정을 소모함으로써 10여 년의 생명을 단축한 당정이었다.


"우우욱...."


당정의 몸이 다시 한번 애벌레처럼 구부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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