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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젖과 꿀이 흐르는 숲 (3/12)

육덕와잎 0 9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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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감



붉어진 눈자위가 살벌하게 번들거리며 CCTV 화면을 훑었다. 

우림이 목덜미에 반점이 생긴 날을 정확하게 기억했으니 용의자를 금방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러나 몇 번이나 확인해 봐도 CCTV에 수상한 사람은 찍히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우림이 모르게 그런 짓을 하려면 분명 잘 때를 노렸을 것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꽃잎이 늘어났으니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어야 했다.


백 회장이 쓰러진 날부터 지금까지 우림의 방을 드나든 사람은 몇 있었으나 우림이 방에 있을 때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창문을 뜯은 것도 아닐 텐데…….”


우림의 방 창문은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관상 좋지 않았으나 하도 이상한 게 자주 꼬이니 안전을 중시한 결과였다.


태오는 우림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런 거짓말을 할 애도 아니었고 태오를 향한 우림의 신뢰는 맹목적이었다. 

오늘 그 짓거리를 겪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말간 눈동자로 쳐다봐서 답답해 뒈질 뻔한 태오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 뭘까. 또 어떤 뒈질 놈이 새로운 미친 짓을 부려 놓은 걸까.


태오는 우림의 방 앞에 달린 CCTV를 노려보며 고민했다.


새벽 3시. 우림의 방문이 열렸다.


* * *


10분 전.


달게 잠든 우림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형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꿈틀대던 그것은 코를 박고 킁킁대듯 우림의 목덜미 근처를 머물렀다.


꽃잎이 세 장. 과반은 넘은 수였다. 스산한 그림자가 부글부글 끓는 진액처럼 뭉쳐져 찢어진 입술을 만들었다.


킥. 킬킬.


가까이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우림은 몸을 뒤척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돌처럼 굳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올라가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


검은 그림자와 찢어진 입술을 본 우림의 눈동자가 홉떠졌다. 

무어라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쳤지만 가위에 눌린 몸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가까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만 있었다. 그

림자는 소용돌이처럼 배 속으로 빨려 들었다.


푸욱! 주먹으로 복부를 강하게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치솟고 속이 다 상해 뒤집혔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혹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그림자는 몸 안에 스며들고 나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퍽! 퍽! 장기에 커다란 손을 넣어 휘젓는 듯했다. 버거운 부피감의 이물질이 온몸을 헤집으며 갈기갈기 찢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고문 같은 감각에 커다랗게 뜨인 눈이 허연 눈자위를 보이며 까무룩 넘어가려 했다. 

침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입술을 달달 떨며 누군가의 이름을 자꾸 불렀다.

눈물로 젖은 눈동자는 넋을 잃고 황폐해졌다.


악몽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측 늘어진 몸을 차지한 그림자가 우림의 몸을 일으켰다. 

마룻바닥을 타박타박 밟고 비틀거리며 문을 여는 것에 우림의 의지는 하나도 없었다.

제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충격과 뇌를 강제로 찔러 조종하는 고통으로 인해 우림의 얼굴은 시체처럼 퍼렇게 질려 있었다.


“안 자고 뭐 해.”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몸뚱이는 아래에 선 태오를 발견하고 움찔거렸다. 잠시 태오를 탐색하던 그것이 주춤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우림아?”


태오는 기묘할 정도로 감이 좋았다. 우림의 몸을 차지한 삿된 존재를 알아차린 것처럼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그는 발걸음을 성큼 옮겨 계단을 올라갔다.


으으! 으으윽! 다가오는 태오를 노려보던 그림자는 우림의 안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손톱으로 내장을 마구 할퀴었다. 

그리고 우림의 몸 안을 사납게 휘저으며 빠져나왔다.


“컥, 우윽……!”


우림은 괴롭게 기침을 토해 내며 계단으로 고꾸라졌다. 태오가 얼른 달려와 받아 주지 않았다면 머리를 크게 다쳤을 정도로 위험했다.


“사, 살려…… 태오, 오빠…….”


식은땀에 젖은 우림의 몸이 태오의 품에서 축 늘어졌다.


우림이 정신을 차린 건 6시간이 지나서였다.

새하얀 병원 천장이 보이고 수액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우림은 뻣뻣한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손가락을 들썩거리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어젯밤 느꼈던 고통도 마치 꿈처럼 희미했다.


“아이구! 이제 깨셨네! 정신 좀 들어요? 여기 병원이에요!”


김 집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우림은 덜컥 몸이 굳었다.


까르르. 깔깔깔!


눈이 벌건 귀신들이 우림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놀라 눈을 깜빡이자 금방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게 아니었다. 

우림이 보지 못하게 된 거였다. 우림은 그 사실을 아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아가씨? 식은땀 좀 봐…….”


김 집사가 호들갑스럽게 속삭이며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마치 근처로 다가온 손아귀가 얼굴을 빼앗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공포에 질린 우림은 경기를 일으키며 그 손을 날카롭게 쳐 냈다.


찰싹! 


매몰차게 느껴질 만큼 큰 소리가 났다. 적어도 우림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죄, 죄송해요…….”


“내가 실수했죠, 뭘. 함부로 만지는 거 싫어하시는데.”


잠깐 굳었던 김 집사는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흡사 예민한 고양이를 바라보는 듯 우림을 살펴보는 눈길이 조심스러웠다.

안쓰러움과 동정심을 담은 눈길은 따뜻했지만 우림은 숨이 막혔다.


“간호사를 부를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혼자 있을게요.”


“이사님이 아가씨 혼자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태오의 말도 그렇고 김 집사는 불안정해 보이는 우림을 혼자 병실에 두어도 될지 걱정스러웠다.


“제가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고 말씀드릴게요.”


우림은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할 수 없이 김 집사가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다.


“요 앞에 있을 테니까 부를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


“네. 고마워요.”


김 집사는 우림의 핸드폰을 꺼내 주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


멀쩡한 척 반듯하게 앉아 있던 우림의 얼굴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지난 새벽의 일과 방금 전의 일은 대체 뭐였을까. 미쳐서 헛것이라도 본 것일까.

보이다가 안 보이니 헛것인지 실제인지 더 헷갈렸다.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병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림은 오한을 느끼고 몸을 웅크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 건 그때였다.


「태오 오빠」


화면을 본 우림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꽃이 피듯 화사하고 달콤한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여보세요?”


- 일어났다며.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근데 나 언제 퇴원해요?”


- 그거야 네 마음이지. 괜찮아졌으면 김 집사님께 말해. 오래 입원해 봤자 뭐 좋다고.


우림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은 게 본인이면서 태오는 못마땅해하며 툴툴댔다. 

새벽의 소란으로 잠 한숨 못 자고 출근한 건 태오인데 안정제 맞으며 푹 자고 일어난 우림의 목소리만 다 쉬어 터진 게 그는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거 거기 둬요. 이따 볼 테니까.


우림과 통화하면서도 태오는 바빴다. 원래도 바쁜 사람이었는데 회장 권한대행까지 맡게 되면서 더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는 유능했다. 업무적인 능력도 그랬지만 언젠가 할아버지가 말하기로는 그릇이 크고 안목이 뛰어나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 내는 눈이 특히나 탁월하다고 했다. 

높은 지분율을 가진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고는 해도 아직 젊은 나이인 그가 큰 반발 없이 회장 권한대행을 차지한 건 그런 점이 바탕이 되었다.


태오는 노력가였고 타고난 체력도 좋았다. 

하루 4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동하는 중간중간 쪽잠으로 때우면서도 태오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집에서 쉬면서도 골골거리는 우림과는 비교하는 게 미안한 건강체였다.


- 너 전에 먹던 한약 어디서 지은 거였지? 홍제동이었나?


비서에게 뭐라고 말하던 태오가 뜬금없이 물었다.


“네, 홍제동이요……. 많이 바쁜 거 아니에요?”


- 잠깐만. 이것만 사인하고. 급한 거라…….


수화기 너머로 종잇장이 펄럭펄럭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잉크를 묻힌 펜촉이 종이에 휘갈겨지는 소리도 났다. 

우림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누웠다. 

병실 침대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났으나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 그래서 언제 퇴원한다고?


“이따 오실 거예요?”


- 저녁에. 7시, 아니 8시쯤……. 병원에 있으면 병원으로 가고 집에 갈 거면 집으로 가고.


한동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림을 피해 다니던 태오였지만 그는 항상 타이밍이 좋았다. 

지나치게 감이 좋아 지금 우림을 혼자 두면 안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집에 갈래요.”


- 그래. 영양제는 다 맞고 퇴원해라. 검진도 다시 받아 보고.


우림은 그의 잔소리를 싫지 않은 기분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고 태오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몸짓이 힘찼다.


- 대답.


“네.”


- 그래.


그럼 이만 끊겠다거나 이따 보자는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전화가 끊겼다. 툭 끊긴 화면을 보고서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즐겁게 허밍을 했다.


* * *


저녁 6시 30분.


태오가 주장한 검사를 다 받고 퇴원 수속을 밟고 나니 이 시간이었다.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건 태오는 얼마나 허약해 빠졌으면 툭툭 쓰러지느냐고 으르렁거리다가 먹고 싶은 건 뭐든 말해 보라며 우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희소식도 들렸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이었다. 백 회장은 우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네. 할아버지. 저는 이제 퇴원했어요. 아무 문제 없대요. 그냥 조금 피곤했나 봐요. 괜히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해요.”


- 조금 피곤한 걸로는 기절까지 하지 않지. 내가 네 나이 때는 날아다녔다.


“저도 날아다녀요. 지금 바로 찾아뵙고 보여 드릴까요?”


- 젊은 애가 늙은 할애비랑 자꾸 붙어 있으려고 하면 못쓴다. 세상이 좋아져서 멀리서도 이렇게 간단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자꾸 귀찮게 찾아올 것 없다.


“할아버지도 참. 보고 싶으니까 뵈러 가는 거죠.”


백 회장은 길게 통화하지 않았다. 네 건강이나 잘 챙기는 게 효도라는 말로 쐐기를 박고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좋아진 우림은 차에 타기 전 카페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우림은 갑작스러운 접촉을 무서워하는 것이지 공황장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얼굴이 워낙 작고 팔다리가 길쭉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비율을 가진 우림을 흘긋거리는 시선이 계속 늘어났다. 

우림은 그 시선들을 조용히 넘기며 무사히 음료를 주문했다.


“32번 손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김 집사님과 경호원 두 명의 것까지 총 네 개의 음료가 캐리어에 담겨 나왔다. 묵직한 무게감에 뿌듯함이 일었다.

우림이 이 모든 걸 혼자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 김 집사와 경호원들은 몇 걸음 물러나 우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깐, 저기요……! 혹시 몇 살이세요?”


어떤 여자가 말을 걸며 우림의 얼굴을 빠르게 훑어봤다. 노골적인 시선에 우림이 멈칫하자 그녀는 재빨리 명함을 보여 줬다.


「HK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


팀장 박하윤」


그녀는 어느새 다가온 경호원들이 우림의 뒤에 서자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학생 정도의 비주얼을 찾기가 워낙 힘들어서요. 케이티즈 래미 아시죠? 래미도 제가 찾았거든요. 오디션 한 번만…….”


“저기, 저 스물네 살이에요…….”


“괜찮아요! 배우 안소진도 저희 소속사거든요! 그리고 지금 HK 차세대 걸그룹 데뷔조가 어느 정도 확정되었는데 동안이시고 비주얼 멤버가 마땅히 없어서 그쪽으로도 가능성이…….”


“내가 얘 보호자인데.”


익숙한 체향을 풍기며 다가온 태오가 난감해하는 우림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거 안 시키니까 헛수고 그만하고 가세요.”


무심히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우림의 경호원들을 보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급한 마음에 기밀 정보까지 뿌리며 우림을 설득하던 하윤의 입술이 얼어붙었다.


태오는 우림의 손에서 음료를 낚아채고 그녀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갑작스러운 접촉이라도 우림은 태오를 마다한 적이 없었다.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에 기분 좋게 달라붙었다.


“아니, 저기, 잠깐만요……!”


성큼 걸어간 태오는 우림을 조수석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우림의 경호원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납치를 묵인했고 우림을 태운 차는 바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일찍 오셨네요.”


“좆…….”


좆 빠지게 일하다 왔다, 라는 표현을 쓰려던 태오는 멈칫하며 순진한 눈망울을 바라봤다. 

우림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기로 반짝거리는 얼굴이 지나치게 예뻤다.


“좆이요?”


“……백우림. 누가 그딴 말 쓰랬어.”


자기가 먼저 한 주제에 태오는 진심으로 진저리 쳤다. 우림은 험상한 얼굴을 웃어넘기고 태연스레 캐리어를 뒤졌다.


“아메리카노랑 카라멜 마끼아또랑 녹차 라떼 있는데 뭐 드실래요?”


태오는 그런 우림을 무섭게 노려봤지만 우림은 빨대까지 꽂아 음료를 내밀었다.


“운전 중이잖아.”


“빨간불인걸요.”


인상을 찡그린 태오가 신경질적으로 빨대를 빨았다. 당도 100%의 카라멜 마끼아또가 혓바닥을 적셨다. 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 충전하시라고요.”


태오는 빨대를 뱉어 내고 두 번 다시 빨지 않았다. 우림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가 쓴 빨대 그대로 음료를 마셨다.


“뭐 하는 거야?”


“저도 이거 마시고 싶어서요.”


쪼끄만 게 보통 잔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태오는 이를 으드득 갈며 앞을 노려봤다.

얼굴만 보면 차가 거칠게 덜컹거려도 이상하지 않지만 차는 부드럽고 매끄럽게 나아갔다.


“있잖아요……. 이사님이 내 보호자예요?”


“그냥 한 말이야.”


기대도 하지 말라며 으르렁거리는 듯해 우림은 살짝 풀이 죽었다.

위협하든 욕하든 전혀 무서워하지 않던 우림이지만 이때만큼은 한숨을 폭 내뱉을 만큼 실망했다. 

안 그런 척해도 우림의 컨디션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태오가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


잠시도 못 참고 그의 입에서 달래는 말투가 나왔다. 우림은 반색하며 물었다.


“둘이서요?”


“……그래.”


태오는 조금 망설였으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그러면…… 잠깐만요. 검색해 볼게요.”


우림은 신이 난 태도로 인터넷을 켜 검색했다.


[데이트 맛집]


키워드를 흘긋 본 태오의 낯이 찡그려졌다.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화면을 휙휙 넘기던 우림은 조명 인테리어가 특히나 예쁜 맛집을 찾아서 보여 줬다.


“여기 갈래요!”


태오는 묵묵히 가게의 이름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 * *


태오와 함께 저녁을 먹고 들어온 우림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지난밤의 일이 모두 헛것이고 잘못 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며, 들뜬 탓에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우림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스윽. 스윽.


소름 끼치게 부드러운 것이 뺨을 간질였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우림은 몸을 움찔 떨며 눈을 떴다.


“허억……!”


킥.


그것은 겁을 집어먹은 우림을 보고 입술을 찢었다. 지난밤보다 더 선명해진 그림자는 얼굴과 형상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손각시였다. 손각시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우림의 뺨을 쓸고 있었던 것이다.


스윽. 기다랗고 축축한 머리칼이 숨통을 덮듯 우림의 입과 코를 막았다. 

소용돌이친 그림자가 다시 우림의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우림은 그것이 들어오기 전에 재빨리 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제발. 제발……!’


벌벌 떨리던 손가락이 위로 살짝 들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몸의 통제권이 돌아왔다. 

우림은 침대에서 뛰어내리고 기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무릎을 찧어 멍이 들었지만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킥. 킥킥. 킥킥킥.


섬뜩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1층으로 내려온 우림은 귀를 막고 숨을 헐떡거리며 태오의 방으로 들어갔다. 

구르다시피 침대에 뛰어들어 태오의 몸을 껴안았다.


“뭐, 뭐야……?”


잠에서 깬 태오가 말을 더듬대며 우림을 바라봤다. 꿈인가 싶어 끔뻑거리던 눈동자가 금세 날카로움을 품었다.


“무슨 일이야.”


몸을 일으켜 수면 등을 켠 그가 우림의 어깨를 붙잡아 단호하게 떼어 냈다. 우림은 패닉에 빠져 버둥대며 다시 태오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 이상한 게 보여요……!”


어린애처럼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 새파랬다. 조금 전에 본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귀신이, 나를…… 웃음소리가 계속…….”


“귀신? 악몽 꿨어?”


“아, 악몽이요?”


우림의 말을 악몽으로 치부한 태오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는 묘한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뭘 그런 걸로 겁먹고 그래. 애도 아니고.”


태오가 그렇게 말해 주니 또 그런 것도 같았다. 우림은 바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AM 03:00]


핸드폰을 켜 시계를 확인한 태오의 눈썹이 들썩였다. 불쾌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직 3시밖에 안 됐어. 가서 다시 자라.”


“여기서 잘래요.”


“백우림. 네 살 아니고 스물네 살이야, 너. 다 큰 게 어디 남자 침대에서 잔다고 그래? 무서우면 너 잘 때까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얼른 일어나.”


태오는 차갑게 말하면서도 어느 정도 양보했다. 

우림이 심하게 겁을 집어먹은 게 이상했고 가슴 언저리에 남은 불길함이 우림을 혼자 보내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싫어요. 여기 있을래요…….”


우림은 고집스레 말하며 숨을 죽였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태오가 못 보고 지나칠 거라고 믿는 것처럼 조용했다. 

차라리 성깔이라도 부리면 혼을 내어 쫓아낼 텐데 그것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혼자 방에 돌려보내면 숨조차 못 쉬고 저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네 마음대로 다 해라, 다 해.”


태오는 고개를 내저으며 두툼한 이불로 우림을 덮었다. 

얇은 슬립과 튀어나온 젖꼭지 실루엣이 눈에 자꾸 보였기 때문이다. 옷차림을 자각한 우림이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끌어안았다.


잠든 지 30분밖에 안 됐지만 잠이 다 달아났다.

태오는 일이나 할 생각으로 베드 테이블을 당겼다.

노트북을 켠 그는 일에 집중하려 노력하며 메일 몇 개를 확인했다. 탁탁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아…….”


숨을 죽이고 있던 우림은 화끈한 열감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또 왜.”


태오는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 내지 않고 건조하게 물었다.


몸에 열꽃이 피며 가슴이 찌릿했다. 또다. 가슴이 무겁게 느껴지며 당겼다. 우림은 울상을 지으며 속삭였다.


“가슴이 아파요…….”


쾅! 작은 속삭임을 뒤덮으며 노트북을 닫은 태오가 우림을 획 노려봤다.


“약 안 먹었어?”


“먹었는데…….”


“돌팔이 새끼들 아냐? 약을 뭐 그딴 식으로 처방하는 거야?”


“…….”


“넌 네 몸 하나도 못 챙겨? 재깍재깍 짜 놓았으면 되잖아!”


분노로 씩씩대는 태오는 어지간한 야차보다 무서웠으나 희한하게 우림은 그런 태오를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잘 안 나온단 말이에요…….”


그녀는 민망해하면서도 소심하게 대꾸했다. 진짜였다. 유축기를 돌려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새로 바꾼 약이 잘 듣는 줄로만 알았다.


“이게 말대꾸만 잘하지.”


잠을 못 잔 것보다 이게 더 피곤했다. 태오는 눈가를 지그시 누르며 이걸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태오 오빠…….”


“그렇게 부르지 마.”


아프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진짜 아팠다. 우림은 유방이 꽝꽝 뭉치는 느낌에 괴로워하며 몸을 웅크렸다. 

숨을 색색거리며 우림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이사님, 나 가슴 빨아 주면 안 돼요……?”


“씨발……. 넌 진짜…….”


썅년이야. 태오는 우림을 모독하는 말을 익숙히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뭐든 한 번이 어렵고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네가 원한 거야.”


태오는 낮게 윽박지르며 얇은 어깨끈을 휙 끌어 내렸다. 

속옷도 하지 않은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슬립을 밀어냈다. 

뜨거운 손바닥이 푸진 살덩이를 지지며 위로 움켜쥐었다.


“하으, 흐…… 읏!”


조금 눌려 있던 젖꼭지가 툭 튀어나오며 젖을 분출했다. 희끄무레한 액에 눈을 맞은 태오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욕을 씹었다.


“미, 미안…… 으흐읏!”


뜨거운 입술이 젖꼭지를 한입에 물어 삼켰다. 

차진 살덩이가 부드럽게 유영하며 젖꼭지를 누르는 게 자극적이었다. 

우림은 태오의 팔뚝을 붙잡고 몸을 들썩거렸다.


“흐, 하으, 좋아…… 읏!”


“이건 진짜 생각이란 게 없나……. 이걸 왜 좋아해. 좋아하지 마.”


그는 매섭게 으르렁거리며 젖을 쭉쭉 짰다. 

커다란 손아귀가 갈고리처럼 젖을 긁어모으고 입술이 압력을 콱 줘 빨아 당겼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릿하게 빨려 한동안 피가 돌지 못한 젖꼭지를 그가 뱉으면 급격히 혈류가 몰아치는데 그 감각이 또 미칠 것처럼 좋았다. 

그것도 모르고 아프게 빤 게 미안했던지 용암처럼 뜨거운 혀가 젖꼭지를 쓸었다.


“흐으, 아으앙!”


자지러지는 신음에 태오는 움찔했다. 

젖을 빠는 게 목적이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는 홀린 것처럼 다시 젖꼭지를 핥았다. 

뜨거운 혀가 빨갛게 익은 젖꼭지를 까슬까슬하게 쓸었다. 

우림은 앙앙대며 울었다. 연한 허벅지 안쪽이 맞닿아 비벼지며 아랫구멍이 흠뻑 젖었다.


좋아. 너무 좋아. 


그렇게 속삭이며 붉어진 눈시울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오래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레 젖을 삼키는 태오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젖이 울컥 솟으며 젖꼭지가 입술에 짓씹혔다. 동그랗게 예쁜 모양이 망가지고 물리고 빨린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이사님 것도, 하읏, 내가 빨아 볼까요? 으응, 진짜 좋은데…….”


“침대에 누워 그딴 말이나 지껄이라고 내가 널, 씨발……. 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해. 언제까지…….”


태오는 젖을 마구 쥐어 뭉갰다. 젖물이 부르르 터졌다.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던 우림이 태오를 몽롱하게 바라봤다.


“하으, 왜 참아요? 뭘, 참아……?”


태오는 무척 모욕적인 말을 들은 것처럼 사납게 눈을 치떴다. 누가 보면 우림이 그의 뺨이라도 때린 것처럼 격정적인 반응이었다.


뭔가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우림의 몸을 비스듬하게 덮은 태오의 하체 쪽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림에게 체중을 싣지 않으려 몸을 띄워서 확실하지는 않으나 언뜻 스칠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우림이 퍽 순진한 구석이 있다곤 하나 스물네 살이었다. 혹시, 설마……. 희망과 의심이 싹텄다.


그 순간 우림은 지금이 아주 중요한 기로임을 깨달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다리가 벌어지며 슬립이 배 위로 미끄러졌다.


“이사님, 하아…… 나, 여기도 뜨거워요…….”


“…….”


진하게 젖은 속옷이 끈적하게 들러붙어 윤곽이 다 보였다. 젖은 구멍이 그의 시선을 빨아 당겼다.


좆됐다. 

태오는 생애 두 번째로 그 느낌을 받았다.

처음은 우림이 납치되던 걸 본 때였고 두 번째가 지금이었다.


“만져 줘……. 하으, 빨아 줘요…….”


우림이 다리를 쭉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며 농락했다. 비틀거리며 끌려온 태오의 팔이 우림의 얼굴 바로 옆을 짚었다.


“이 미친, 하지 마…….”


섬뜩한 예감이 든 태오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느다란 팔이 술에 취한 것처럼 무거운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당겼다. 두 입술 사이가 무섭도록 가까웠다.


누가 먼저 닿았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우림은 태오의 입술이 생각보다 더 뜨겁고 축축해서 놀랐다.

혀로 맛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달달하고 고소한 젖내가 났다. 

두꺼운 혓바닥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우림은 우악스레 들어오는 부피에 떠밀렸다.


태오는 먼저 부추긴 주제에 놀라 숨는 괘씸한 혀를 가로채어 모질게 괴롭혔다. 더운 살덩이가 교미하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비벼졌다.


억센 손아귀가 젖을 콱 움켜쥘 때마다 습한 숨소리를 내며 앙알대려는 입술이 꽉 막혔다. 

잔열을 다 토해 내지 못한 우림은 다리를 비비 꼬았다. 

자신에게 이런 욕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아랫구멍이 간질간질했다. 

뭐든 집어삼키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듯 애액을 왈칵 토해 내며 아귀처럼 입을 쩍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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