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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짐승 계약 #9장(2)

원정가자 0 9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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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로 빠르게 쳐올리는 힘에 희민의 물풍선 같은 젖가슴이 탁탁거리며 몸을 때려 댔다. 

정신없이 빨라지는 움직임에 참을 수 없어진 희민의 신음이 급격해지는 순간에도 정혁은 그녀의 뒷머리를 움켜잡고 시선을 얽었다.



“아흑, 흣, 아읏!”



희민의 부서질 듯 엉망으로 흔들리는 시야에 자신에게 고정된 정혁의 눈이 들어왔다. 시선이 진하게 얽혀 드는 순간 희민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왜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안기면서 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건지. 왜 심장이 이렇게 아픈 건지.

급격히 치밀어 오른 절정의 순간, 희민은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정혁의 팔뚝을 손톱으로 긁어 내렸다.



“아, 안 돼! 그만!”



그러고도 정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다리를 허공으로 한껏 들어 올리며 엉덩이를 잡아당겨 뒤쪽으로 깊이 찔러 들기 시작했다. 

자지러질 듯 몸을 비트는 희민을 움켜잡은 정혁은 불끈거리는 둥근 근육질 엉덩이에 힘을 주고 사정없이 쳐올렸다.



“아아아―!”



연속으로 덮쳐든 해일 같은 오르가슴에 희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



그가 놔준 건 아침이 되어서였다. 

몸을 감고 있던 강한 팔에서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지만 희민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커다란 몸이 조용히 떨어져 나가자 왠지 등 뒤가 허전했다.



‘허전하다니?’



허전함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당황한 희민은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게 뒤에서 느껴졌다.



“…….”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침대 한쪽에 무게감이 실린 채 한동안 움직임이 없는 것이 느껴지자 희민은 그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미 자는 척을 하고 있어서 돌아볼 수도 없었다. 

침대 위에 그냥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의심이 들었다.



‘설마 날 보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그에게 보이는 쪽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황급히 지워 봤지만 긴장으로 뺨에 경련이 일 것 같았다.



‘자는 척도 못 할 짓이구나.’



괜히 자는 척했다고 후회가 됐다. 서정혁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까. 차라리 빨리 씻으러 갔으면 좋…….

희민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뺨에 무언가가 가만히 와 닿았다.



“!”



희민은 순간 흠칫 놀랐지만 가까스로 눈을 뜨지 않았다. 

뺨에 닿은 건 그의 손등이었다. 

그대로 조용히 얼굴에 대고만 있자 희민의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생각하는데 정혁의 손등이 얼굴을 가볍게 훑어 내렸다. 

마치 피부의 온도를 확인하듯 천천히 훑어 내린 그의 손이 곧 떨어졌다.



끼익.



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게 느껴지고 곧 무게감이 사라졌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희민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하아.”



쥐고 있던 손을 펴자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차 있었다.



‘뭘 이 정도로까지 긴장을 해……. 그런데 그 남자…….’



방금 서정혁이 잠든 제 얼굴을 매만졌다는 사실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다.

계약 관계일 뿐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해선 하나도 말해 주지 않는 남자가, 방금 전 했던 행동의 의도는 뭘까?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 같은 거잖아, 그건.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희민이 신음 같은 한숨을 토해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뉴욕에서 했던 말 중에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당신 머리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듯이 영리한 게 꼭 좋지만은 않아.’



그 말은…… 서정혁은 알고 있다는 뜻일까?



누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 사건 전체를 그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 걸까? 

좋은 머리 이용해서 영악하게 스파이 짓 하려다가 자기 발등 찍은 거라고?



‘알면 다친다고 했지. 내가 위험해진다고…….’



그에 대해 아는 걸 누설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해진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래서 계약 조건에도 이 저택에 있는 동안의 일이나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절대 함구한다는 조항이 있던 거였나?



서정혁이라는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남자의 아이만 낳아 달라는 뜻.

처음엔 그게 편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희민이 어두워진 얼굴로 손을 뻗어 제 심장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쿵쿵쿵,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에 그녀의 얼굴이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




정혁이 슈트 차림으로 방에서 나오자 차 실장이 복도에 서 있었다.



“회장님. 출근하시기 전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세요.”



정혁이 멀끔하게 정돈된 머리칼을 가볍게 훑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차 실장은 정혁이 방금 나온 방 쪽을 짧게 쳐다봤다.



“서재에서 했으면 하는데요.”


“그럼 그렇게 하죠.”



차 실장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정혁이 복도를 걸어 서재 쪽으로 향했다. 

차 실장은 조용히 그를 뒤따라 걸어갔다.



서재 역시 철저한 시스템으로 온도와 습도, 산소량까지 조절되는 공간이었다. 

책들이 많아 더 신경 써서 관리되는 넓은 서재의 한가운데에 소파가 있었다.



“앉아요.”



정혁의 권유로 소파에 마주 앉은 최 실장이 곧장 용건을 꺼냈다.



“이제 그만 계약을 종료하시는 게 어떨까요.”


“…….”



정혁이 최 실장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감정 없는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넉 달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건, 한희민 씨와는 임신이 어려운 상태로 보입니다.”


“그래서 계약을 종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정혁이 묻는 말에 차 실장이 안경테를 추켜올리고는 다시 시선을 맞췄다.



“지금 최종 검사 단계에 진입한 여자가 있습니다. 검사가 마무리되면 결과가 나오겠지만 지금 상황으론 한희민 씨보다 더 회장님과 맞는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도 더 어리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종료한다?”



반복해서 질문하자 차 실장이 차분하지만 명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희민 씨와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시도는 그만두시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시는 게 낫습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



“차 가져왔습니다.”



유리가 공손히 찻잔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고마워요.”



희민은 유리의 시야에 노트북 화면이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보고 있던 창을 내린 상태였다. 

유리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찻잔만 내려놓고 곧바로 물러갔다.



희민은 보고 있던 창을 다시 올릴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



이곳은 정혁의 방이었다. 다시 한국에 온 뒤로 그의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얼마 전 기억이 다시 침투했다. 잠시만 틈을 둬도 바로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그 손길은…….’



그가 제 얼굴을 어루만지던 것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착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그 감촉은…… 꿈이 아니었는데.’



그날 정혁은 욕실로 간 뒤 그대로 드레스룸으로 건너가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갔다.

다시 침대 쪽으론 오지 않았는데도 그가 나가기 전까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건 긴장이 아니야.’



오히려 기대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시끄럽게 울리는 심장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기대라니? 뭘 기대하는 거야? 그 남자가 다시 와서 아까처럼 다정하게 매만져 주기라도 바라는 거야?’



자신이 한심해서 시트를 꽉 움켜잡았었다.



그날 이후로 내내 그 일은 답답함으로 남았다.

자신 안에 있는 선명한 기대를 느껴 버린 이상, 착각이든 아니든 그의 손길에 기대를 품게 된 이상……. 

달라져 버린 자신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쓸데없는 고민만 반복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희민은 그날 생각하다 억지로 멈춘 지점을 다시 떠올렸다. 

그땐 급작스러운 자신의 반응에 당황해서 멈춰 버렸지만 지금은 그때 이미 도출된 결과값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 지금은 아니야.’



이 저택에 처음 온 날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달라졌다. 그땐 아예 모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남자가 궁금했다.

그 남자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 혼란스러움이 걷힐 거라는 생각도 그저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빚어낸 간사한 핑계이고 설사 그저 육체적으로 길들여진 것뿐일지라도 서정혁이라는 남자가 알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하.”



결론에 도달하자 희민이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건가?’



내심 피하고자 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고 보니 씁쓸했다. 

이곳에 올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땐 최악의 소문만 상상할 때였으니 어쩔 수 없긴 했다. 

어쨌든 당시엔 스스로의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었다.



서정혁이라는 남자는 그 소문과는 달랐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계약 관계의 남자를 마음에 담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자신의 삶이 철저히 망가진 이런 상황에서 빠지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그와 자신 사이엔 오로지 육체적인 관계밖에 없는데.



‘육체관계에 빠져 사랑이라고 착각하다니.’



몸정이 가면 맘정도 간다느니, 몸에 길들여지면 마음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감정 없는 육체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환멸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지금까지 환멸하던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희민이 멈칫해선 고개를 들었다. 아침에 나갔던 정혁이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왔어요?”



보통 저녁쯤이나 밤에 올 때가 많았는데 아직 3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희민이 의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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